다시는 취하도록 술을 먹지 않겠다 - 를 다짐하기 위한 진지한 반성일기
택시를 탄 순간 취기가 확 오르면서 필름이 반쯤 나간 것 같다. 올라오는 구토를 참을 수 없어 택시안에 흩뿌리고 10만원 물어준 기억뿐이다. 어찌저찌 집에는 들어왔나본데 눈뜨고 보니 현관에서부터 옷을 허물처럼 널어놨고 그와중에 콘텍트 렌즈는 야무지게도 빼고 잤다. (한달짜리 렌즈 이틀전에 새로 개봉한건데 아...)
가방과 코트에는 구토가 뭍어있고, 다행히 지갑은 있는데.... 핸드폰이 없었다. 전화해도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무려 이틀째. 정황상 택시에 두고온 것 같은데 왜 받지를 않을까. 월요일에 택시회사에 전화해서 기사아저씨에게 연락을 해보려한다. 진짜 잃어버렸다면 여러모로 X되는데, 주말 내내 마음이 쫄리며 현타 가득한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 - 일요일 저녁 다시는 취하도록 술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 진지한 반성일기를 끄적여본다.
대학교 1학년때 엠티에 가서 주량도 모른채 술을 잔뜩먹다가 만취한 적이 있다. 신남을 주체못한채 친구들과 대성리 골목을 거닐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 한쪽에 스크래치가 크게 난적이 있다. 약 한 달간 메디폼을 잘 붙이고 다닌 덕에 흉터는 남지 않았다.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내가 얼마나 알코올 자제력이 없는지를. 무서운지도 모르고, 다행인지도 모른채,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겼다고 깔깔대며 웃기나했다. 그래 이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20살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대학교 2학년, 3학년때도 알코올 자제력은 콘트롤 불가였다. 한창 술맛을 알게된 때, 약간 흥분된 기분으로 정신의 끈을 살짝 놓은채 깔깔대며 웃는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이 시절의 나는 스트레스 푸는 법을 몰랐기에 그저 만취하고 노는게 제일 즐거운 일인 줄 알았다. 술집에서 구토한 적도 많았고, 길거리에서 토한적도 많았고, 도저히 돌봐줄 수 없는 수준이면 친구들이 엄마를 부르곤 했다. 세 네번은 되었을 것이다. 엄마가 친구들 전화를 받고 나를 데리러 온 것이.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서서히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숙취와 함께 필름이 나간채로 침대에서 눈을 뜬 날이면, 나는 진짜 쓰레기다 라는 말을 되네이기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 취준생 시절, 입사후 2년까지, 총 약 3년정도를 술과 멀리하며 지냈다. 주변의 인간관계가 많이 바뀌면서 술을 (맘편히 만취할때까지) 마실 일도 많이 없었고, 혼자 집에서 홀짝홀짝 마시는 술이 더 좋아졌다. 사는 재미를 알코올 에피소드로 채우는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 재미가 필요할만큼 일상이 무료하지도 않았고. 꼭 술이 아니어도 사는 재미가 많았기 때문이다.
작년 2019년 하반기쯔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고있지?
회사생활도 이제 어느정도 적응됬겠다, 별다른 취미생활도 정착하지 못했을 때 쯔음 한번 쯤은 찾아온다는 인생노잼 시기가 다가왔다. 우습게도 나는 또 다시 술을 찾았다. 인생 뭐 있냐!!! 이제 이십대도 얼마 안남았어!!! 마셔~ 적셔~먹고 죽어!!! - 라고 외치고 실제로 여러번 죽었다. 어렵기만 했던 회사사람들이랑 술잔을 부딪히며 콘트롤 정신을 쿨하게 놔버리는 일은 부지기수, 엉뚱한 곳에서 집에 간다며 마을버스를 탔다가 종착역인 삼청동 파출소에 버려진 일도 있었고 (이날도 엄마가 데리러 왔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꺼냐며 등짝을...), 똑바로 걸으려해도 자꾸 비틀거려서 온 무릎에 멍이든채 걸어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잊지못할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바로 나의 소중한 맥북을 망가뜨린 것이다. 큰 맘먹고 구매했던 160만원짜리 맥북 프로는 그렇게 첫 돌도 맞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업무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맥북을 구매하며, 나는 반성의 의미로 맥북프로에서 맥북에어로 강등시켰고, 날린 돈을 생각하며 그해의 휴가도 가지 않았다. 가장 끔찍했던 시기를 보내며, 나는 정신적으로도 금전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다시는 이따위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20년 1월 31일, 새해 첫 달이 가기도 전에 나는 또 한번 알콜 쓰레기가 된다. 기어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구나.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만취할 때까지 술은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한 달도 못가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 나를 보며 나는 정말 술을 먹을 가치가 없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주량도 알겠다, 스스로 조절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 취기가 오르면 나도 모르게 이리도 쿨하게 그 끈을 놓아버린다. 새삼 몸뚱아리 성한 곳 없이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술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얼마나 많은 흉악범죄가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데도 이러다니. 나는 정말로, 정말로 술을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다.
앞으로 나는 절대 취할때까지 술을 먹지 않을 것이다. 약간의 반주나 맥주는 할 지언정, 소주와 독주는 절대 절대 5잔 이상 먹지 않겠다. 서른이 코앞인데, 이따위로 살다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다. 애초에 자제력이 없으면 술을 마시면 안된다. 술 쳐먹고 범죄 저지른 뒤 기억이 안납니다 따위의 개소리 지껄이는 사람들과 다를바가 없다. 2020년 1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이 끔찍한 알코올 연대기를 끝낼 것이다.
술 먹느라 쓴 돈이며, 버린 건강이며, 실수로 날린 돈들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매번 말로만, 마음속으로만 다짐을 하니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충격효과를 주고자 글을 쓴다.
다시는 취할 때까지 술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휴대폰은 제발 꼭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찾지 못해 폰을 다시 사게된다면, 그러느라 또 한번 목돈을 버리게 된다면, 그 목돈으로 살 수 있는 소주의 양만큼 금주 할 것이다 (적어도 5년은 되겠지)
아무튼 이제 절대로 취할때까지 술 먹는 일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