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나의 일상에 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색이 없었던 건 분명 아니었다.
분명 있었다. ‘무채색이라는 색’ 이라도 꼭 있었다.
하지만 나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들이 서서히 무너지더니,
언젠가부터 무채색도 없어지고 나의 세계에는 ‘색’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색이란 건 무엇일까.
희망? 절망? 고통?
이 모든 것들이 색이라고 생각한다.
쏟아낸 감정들이 한데 모이고 엉키며 자신 고유의 색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보니까.
힘들면 힘듦의 색,
기쁘면 기쁨의 색,
섞이면 섞인 색.
그 모든 색이 우리 자신이다.
색이 없다는 건, 감정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정말로 나의 세계에 ‘색’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냐고.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슬프지만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감정 없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면 진짜 있긴 있었다.
때는 중3.
한참 즐겁게 웃고 떠들 시기.
이 시절의 난, 감정이 없었다.
웃지 않고 울지 않고 이런 뜻이 아니다.
무엇을 해도 만족감도 불만족감도 없었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고,
무슨 일에 대한 반응도 없었다.
나의 반응은 단순히 마음에 없는 말이기보다는
‘이 상황에는 이런 말을 한다’는 데이터로 말했었다.
스스로 벽을 쳤다.
아무 사람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관계? 그건 그냥 표면적인 이야기였다.
애초에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하지만 전공 특성상 살긴 살아야 하니 이미 있는 관계는 굳이 없애진 않았다.
겉으로는 관계도 좋고 그래 보일 지 몰라도 실제로는 어느 벽 안으로 사람들을 들이지 않았다.
믿을 사람은 없었다.
결국 믿음을 주면 다시 깨져서 돌아오는 관계가 대다수였으니까.
나의 전부였던 사람들도 하나 같이 날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닌 관계도 많이 있지만, 색이 없어서였을까. 다 버렸다고 느껴졌었다.
어쩌면 색이 없어진 건 내가 자초한 일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색을 없애고 싶어서 없앤 건 아니었다.
내가 색을 입히고 싶어서 입힌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이미 있는 관계도 유지하기 힘들었다.
한때 다 포기하고 도망가려고 했었다.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날 붙잡았다.
도망도 안되고 포기도 안되면 대체 이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라는 걸까.
나라는 색 없이 연습을 하고, 연주를 하는 이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음악에서부터 색을 잃고, 그러면서 현실 세계에서도 색을 잃어갔던 것 같다.
차라리 무채색이라도 있으면 이보단 조금 낫지 않았을까.
밝음과 어두움이라도 있으니까. 그 조차 없었었다.
색은 모르겠고, 일단 도망가고 포기하려고 할 때 붙잡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원망스럽진 않았다.
그냥 귀찮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왜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있으라는데, 이 버거운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지?
왜 살아가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알아서 깨닫길 바라는 거지?
살아가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다들 알아서 버텨보라고만 했다.
마음에 있어서는 아무도 날 보려 하지 않았다.
나의 세계에는 색이 없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색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고 다시 색이 들어오지 못하고 도로 나가버리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절망적이었고, 어차피 내게 색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 색을 없앴다.
색은 고통을 다시 가져올 거라는 굳은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