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늘 마지막이라는 걸 모른 채 가장 다정한 말을 남기게 될까.
그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그 눈 맞춤이, 그 웃음이, 그 평범했지만 특별했던 하루의 끝이 두 사람의 끝이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은 늘 그렇게 너무 조용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 슬프다.
그래서, 잊히지 않는다.
개나리가 만개했던 그날, 그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날 나는 그의 일터에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말이 작별이지, 우리는 그걸 인지하지 못한 채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서로를 배웅하고 있었다.
“또 올게요. 건강히 잘 갔다 오고, 사랑해.”
그는 말없이 웃었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나는 그 웃음을 안고 돌아섰다.
그때는 진심으로 다시 올 줄 알았다.
그가 거기 있을 거라고, 우리는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별다른 의심 없이 믿었다.
우리가 아직 덜 다정했기에, 앞으로 더 다정해질 줄 알았기에.
나는 자주 그날을 떠올렸다.
내가 남긴 마지막 말, 그의 표정, 우리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이후에 점점 멀어졌던 그의 마음까지.
그가 내 마음을 감당하기 버거웠을까, 아니면 진작부터 그는 이 작별을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그의 말이 점점 줄어들고, 그의 태도가 점점 단정해질수록 나는 그날의 “사랑해”라는 말이 그에게는 너무 무거운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며 불안해졌다.
그의 부족한 설명도, 예고 없이 단절된 관계도,
모두 그 사람이 가진 감정의 언어가 거기까지였던 것뿐이라고 조금은 담담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어쩌면, 처음 누군가를 사랑했는지 몰랐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고, 마음을 오래 품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누군가의 진심을 다 받는 일이 자신을 잃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나는 그걸 그제야 알았다.
슬픔은 미련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어떤 말도, 어떤 장면도 부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소중하다.
그래서, 그게 더 슬프다.
이제는 다시 닿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이젠 그 마음을 건넬 이유도, 자리도 없다는 걸 아프도록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한다.
“또 올게요. 건강히 잘 갔다 오고, 사랑해.”
그리고 그 말을 했던 나를,
아직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진심이었기에, 그날의 나를
한없이 안쓰러워하면서도
한없이 아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