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기억 속의 나를 꺼내오기
“안녕하세요 선생님 한 주 잘 보내셨어요?”
“네, 바다 씨 안부인사 고마워요. 오늘은 얼굴이 훨씬 편안해 보이네요.”
나는 조심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요즘은 예전처럼 흔들리지는 않아요. 오늘은 일부러 옷을 좀 밝게 입고 왔어요”
“밝은 색깔 옷이 잘 어울려요. 바다 씨는 한 주 어떠셨어요?”
“잠을 좀 못 자긴 했는데, 그래도 좀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상담이 기대가 되기도 했어요 “
“듣던 중 반가운 말이네요. 시작해볼까요?”
그날은 상담 초반부터 주제를 정해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도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를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안에 감춰둔 마음을 글로 써보는 시간이었다.
“이유를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선생님은 부드럽게 물었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자꾸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제 감정이 흐려지고 상처도 작게 느껴져요. 그걸 멈추고 싶어요. 이건 저 자신을 위한 기록이에요.”
나는 그의 이면을 너무 많이 보려 했다. 부정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논리로 반박했던 사람
그는 늘 해명했다.
그 해명은 내 감정과 무관했다.
그에게 감정은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논파할 대상’이었다.
하나의 어긋남으로 단절을 택했던 사람
“다 맞을 필요는 없지만, 하나라도 안 맞으면 굳이 맞춰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 말이 참 차갑다고 느꼈다.
선생님은 조용히 듣다가 말했다.
“그건 애초에 관계를 함께 만들어갈 의지가 없는 말이죠.”
그의 기준엔 유연함도, 감정의 여지도 없었다.
서로의 다름을 껴안기보다, 차이를 잘라내는 방식이었다.
혼자 정리하고 혼자 떠났던 사람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했지만,
그 시간은 곧 혼자 내린 결론의 시간이었고, 나는 그 결론 앞에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침묵은 준비된 단절이었다.
나는 여전히 대화의 문 앞에 서 있었는데, 그는 이미 마음을 닫은 채 저 멀리 있었다.
상대의 진심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말했는지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 느낀 거고, 저는 다르게 느꼈어요.”
그에게 나의 감정은 그저 과잉 반응이었고, 나는 그의 기억 안에서 왜곡된 사람으로 남았다.
감정보다 체면이 중요했던 사람
그는 내 감정보다, 자신의 이미지와 정리를 더 우선시했다.
그에게 나는 사랑과 자랑이 아닌, 불안과 통제 불가능성의 상징이었고, 결국 그는 감정을 사랑한 게 아니라, 관계의 안정감만을 원했던 사람이었다.
마음을 견디지 못했던 사람
처음에는 나의 섬세함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는 피로를 느꼈고, 끝내 말없이 나를 밀어냈다.
나는 ‘무거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오래 참았고,
그 결과 관계 속에서 나는 점점 존중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는 말이 없거나, 있어도 감정을 덜어내는 방향이었다.
“지금 이거, 괜히 힘들게 만들지 마요.”
“그냥 생각을 덜 하시면 편해져요.”
그런 말들로 나는 조금씩 지워져 갔다.
슬퍼도, 불안해도, 그의 세계엔 감정보다 안정적인 구조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구조는 결국 내 마음을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마음은 어떤가요?”
늘 선생님께서 마지막에 묻는 말에 오늘은 조금 더 단단히 대답할 수 있었다.
“말로 글로 꺼내니까 갑갑했던 마음속의 안개가 좀 걷히는 기분이에요.”
그날 나는 상담실에서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감정의 중심을 다시 잡았다.
그의 그림자를 딛고, 내 마음의 자리를 단단히 다시 잡는 일.
그게 지금 내가 해나가고 있는 회복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