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으로 여겨진 마음

나도 누군가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by 나의 바다

상담이 다가오면, 한 시간쯤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에 간다.

메모장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건 대개 느낌이 아닌 해석에 가까운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게 ‘세 번째는 마지노선‘이라는 말을 꺼냈다.

세 번째면 이제 바꿀 수 없고, 변하지 않으며 이번에도 그렇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 기준은 내가 알지 못했던 것이었으나, 나의 행동이 마치 퀴즈의 오답처럼 판정되는 상황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런 구조가 ‘프레이밍 전략’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관계 안에서 이미 정해둔 기준선을 꺼내 들고, 그 기준을 ‘룰’로 선언함으로써 관계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방식.

공유되지 않은 규칙을 들이미는 사람은 결국 판정자가 되고, 상대는 피평가자가 된다.


그는 반복되는 문제라고 했지만, 나는 그 문제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은 애초에 내가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했던 순간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내 행동을 ‘너 원래 그렇잖아’로 귀결 지었다.

나의 행동과 감정을 상황적 정서로 보지 않고, 내 고정된 성격으로 판단하여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특정 맥락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상황과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나의 반응을 ‘성격의 결함’처럼 진단했다.


나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그는 이미 정리를 마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말이 언제 다 전해 졌는지조차 모른 채 결론 앞에서 멈춰야 했다.


내 감정을 “또 그런 식”이라 했고, “또 감정적으로 나왔다”라고 정리했다.


감정을 말하는 사람에게 “감정적이야”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가 감정에 대한 폄하적 태도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성향과 연결 짓기도 한다.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낮거나, 감정 그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

자신의 감정은 억제하면서 타인의 감정 표현은 위협적으로 느끼는 사람.


내가 했던 말들은 그에게 소란이었을까.


관계는 완성된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미완성을 진단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감정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을 정리하며 그런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판단받지 않는 안전함 속에서 나 또한 누군가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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