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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스프리 Oct 04. 2019

늦었다고 전철 안에서까지 뛸 필요는 없다

     늦잠을 잤다. 오랜만에 야근을 해서인지 몸이 무거웠다. 몸이 물에 잔뜩 젖은 솜뭉치 같았다. 렘수면 사이클을 잘 맞추려면 90분 단위로 자야한다는데 정해진 시간에 자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재주는 없었다. 오늘은 그 사이클을 아주 엉망으로 맞췄나보다.


     월급을 더 이상 못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어떻게든 일어나지더라. 팔짱끼고 나를 내려다 보는 신용카드가 일어나서 아침밥 먹으라는 엄마의 등짝 스매시보다 강하다. 대충 씻고, 대충 입고 문을 닫았다. 아침 잠을 포기하고 몸을 일으키는 건 지구를 맨손으로 한바퀴 돌리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을 매일 평일 아침마다 반복하는 우리는 헤라클레스보다 약하다 할 수 없다. 빠르게 지하철로 반은 뛰듯이 가며 반성을 한다. 핸드폰 확인하자마자 바로 일어날껄 거기서 왜 또 네이버를 켜서 웹서핑을 하고 말았을까. 유튜브까지 훑어본 건 정말 오버가 아니었나.


     집에서 원래 걸으면 10분 걸리면 도착하는 역에 뛰듯이 걸으니 5분만에 도착한 것 같았다. 멜로디가 들리면 이렇게 다급한 날에는 안 뛸 수가 없다. "스크린도어가 닫힙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몸을 밀어 넣었다. 이 순간이 좋다.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는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이 뛰더라도 지하철 문이 닫히면 모든 일이 끝난 것만 같다. 지각을 하든 말든 뭐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힘내서 뛰었고 이제는 나의 노력이 아니라 지하철이 노력할 일만 남았다.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고, 실제로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라 해도 지하철이 움직이는 동안 나는 여유롭게 책도 읽을 수 있고, 유튜브도 볼 수 있다.


     출근 길에 느끼는 이 안도감이 더 일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다. 충분히 열심히 하고,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래, 이 정도면 난 최선을 다했어. 결과는 내 손을 떠나 있으니 마음 편히 기다리자" 전날 밤 늦게 자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에 손을 뻗어 유튜브를 키지 않는다면 뛸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건 오히려 너무 재미 없는 삶 아닐까 싶다. 뛰기도 해봐야 걷는 것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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