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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Oct 26. 2023

아빠와의 벚꽃 엔딩

엉망진창 완벽주의 엄마라서

우리 아빠는 첫 번째 손녀가 태어나 꼬물거리는 걸 1년쯤 보다가 돌잔치하고 한 달 조금 지나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아직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초가을에, 바람이 기분 좋을 만큼 선선하게 불고 햇빛이 온종일 따뜻하게 있던 날. 아빠와 엄마와 나랑 꼬물이 이렇게 넷이서 근처 한적한 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아빠는 오동통한 꼬물이를 그때 우리나라 국가대표 역도선수 '장미란 선수' 만큼이나 튼실한 허벅지를 갖고 있다고 '아기 장미란'라고 불렀다.

꼬물이도 지지 않고 외할아버지만 보면 아빠의 몇 분마다 한 번씩 콜록 거리는 기침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며 자기 나름 장난을 쳤다. 또 아기 주제에 유아용 노래보다 가요에 더 반응을 잘했는데 외할아버지 핸드폰 벨소리의 '벚꽃 엔딩'을 특히 좋아해서 아빠는 핸드폰 벨소리를 무한재생시켜 꼬물이 손에 아예 넘겨주곤 했다.


아빠는 결혼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큰소리치던 똥고집쟁이 딸이 진짜 결혼을 안 해서 오동통한 손주도 한 번 못 보게 될까 봐 마음을 꽤 졸이셨던 모양이다. 보통은 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오면 아빠들이 사위가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서운해한다고들 하던데 우리 아빠는 예비사위를 보고 너무나 안심되고 기쁜 나머지

"앞으로 사는 동안 매일 자네 있는 곳으로 하루에 세 번씩 절하겠네!"라고 하셨다.

아휴.. 진짜 못 말린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했다 그건! 내가 누구 닮았는지 본인이 누구보다도 잘 아실 텐데!!?


성격도 외모도 '복사+붙여 넣기' 한 것처럼 꼭 빼닮은 우리는 내가 머리가 조금 굵어지는 사춘기 시절부터 사이가 평탄하지 않았다.

나 못지않게 집착쟁이에다가 성공지향형이던 아빠는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학업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고, 나는 그런 아빠가 너무나 미웠으니까. 다정다감한 친구 아빠를 보면 우리 아빠도 저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고3 때는 갈등이 거의 최고조가 되어 1년간 아빠랑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내내 아빠가 학원이든 어디든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해서 단 둘이 있을 때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뚱하니 말도 안 하고 지냈을까? 수능 보는 날 까지도 그랬으니 그 아빠에 그 딸이지.

그러다 내가 아빠가 오매불망 기원하던 대학에 합격하면서 우리 사이의 긴장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둘 다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한 순간에 잊어버렸다는 게 더 맞을 듯.

나는 이제 대학을 다니고 서울로 가서 난생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살 생각에 바쁘고, 아빠는 일가친척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식당이나 버스 안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자랑을 하고 다니느라 바빠서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아빠에게 늘 살가운 데라고는 하나 없는 딸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조금은 삐딱하고 뾰족한, 조금은 삐걱거리는 그런 아빠와 딸이었다.


우리 아빠는 도. 대. 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빠는 자신의 단점까지 쏘-옥 물려받은 내가 제일 걱정되고 애가 탔던 거다. 그랬던 아빠눈에 자신과 꼭 닮은 딸이 무사히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아서 또 자기와 꼭 닮은 딸 하나를 데리고 살랑살랑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안심되고 보기에 좋았을까?


그때가 내 인생의 봄날 같은 때였다.

아직 뜨거운 여름의 강렬함도, 늦가을의 쓸쓸함도, 한겨울의 매서움도 모르는, 벚꽃엔딩의 가사처럼 '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잎들~~'처럼.


아빠가 마지막으로 본 나의 모습이 그것이다.

아마도 아빠는 자신의 병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겨울을 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스산하고 어두웠을 마음 한편에 나의 '봄날'을 선물했다고 생각하니 끝없이 밀려드는 자책과 후회 속에서 나름 큰 위안이 된다.

꼬물이가 예상을 깨고 빨리 찾아와 준 덕분에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시원하게 한번 효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정말 명곡이다.

아직도 해마다 봄이 되면 여기저기서 그 노래가 들리곤 한다.

나는 그때마다 벚꽃 엔딩을 하루종일 무한재생하며 들었던 그날, 아빠와 꼬물이와의 마지막 소풍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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