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끼빠빠라는 말은 한때 유행하던 표현으로,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이 말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낄 때 끼는 것은 비교적 쉽다고 생각되지만, 정작 빠져야 할 때에는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히려 무리한 행동이나 말, 선택으로 더 큰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이러한 후회는 결국 분노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조절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내 삶에서 여러 관계가 멀어지고, 끊어지고, 멈춰지고 있다.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가지며 타인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 했기에 이러한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음은 여전히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그중에서도 특별하고 소중히 여기던, 꼭 유지하고 싶었던 관계가 멈추어야 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나는 큰 흔들림을 느꼈다.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이 이해가 됐고, 그와 동시에 관계를 이어가려는 내 욕심이 분명히 보였기에 결국 관계를 멈추기로 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찬양을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생각들로 인해 눈물이 흘렀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찬양을 즐겨 듣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진다.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귓가에서 끊어지지 않던 찬양의 노랫말은 위로가 되고 기도가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을 통제하려 발버둥 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던 나, 그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무너지고 스스로를 자책하던 내가 보였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그렇게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시간을 지나며, 나는 관계의 끝이 다가오는 이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약속을 정하면 좋겠다는 생각 했다. 그래서 관계의 끝을 서두르지 않고, 그 시간을 길게 두기로 했다.
관계의 끝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마치 안갯속에 있는 것만 같다. 짙고 두꺼운 안개가 내 앞을 가리고 있어 답답하고 어둡다. 하지만 이 시간 또한 필요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순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안개는 서서히 옅어지고, 결국 걷힐 것이다. 그러나 그때 빛을 두려워하거나 눈이 부시다고 피한다면, 나는 다시 이 안갯속으로 돌아오고 말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안갯속에서 충분히 수분을 머금고, 빛이 안개를 밀어내 나에게 닿을 순간을 준비하기로 했다. 마치 빛을 기다리는 나무처럼, 꽃처럼,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관계의 끝을 길게 두는 시간 속에서 나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실천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안개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관계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만약 상대의 삶에 다시 안개가 낄 일이 생긴다면, 나는 가장 짙은 안개가 되어 그를 감싸 안고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안개가 되어서 다시 다가가고 싶더라도, 상대방의 삶에 빛이 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관계의 시작에서, 나는 그 사람의 삶이 환하게 빛나길 바랐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도움이자 일부분이 되려 했다. 그렇기에 관계가 멈춘 후에도, 상대방의 삶에서 빛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 안개가 되려는 시간을 갖는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끝이 난 관계를 대신하기 위해 섣불리 다른 관계를 시작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안개가 되려는 시간을 나를 위한 보호 장치로 삼고 있다. 이 시간이 나에게 필요함을 인정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시간이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이 될지라도, 요동치는 감정을 잘 견디고, 남아있는 미련은 잘 비우며, 관계 중 드러났던 나의 부족함과 아쉬움들을 잘 채워야만 새로운 관계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