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
"사람들은 지식인의 행위와 직능의 테두리가 문화적 보수주의라고 생각하며, 지식인들이 이 테두리를 넘어섰다고 생각되기만 하면 즉시 쓸데없는 헛수고를 한다고 비난하는데 사실 이 비난은 옳은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식인들의 말에 누가 귀를 기울여 줄 것인가? 더욱이 그들은 본질적으로 무력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전혀 '생산'하지 않으며, 기껏 봉급에 의존하여 먹고사는데, 그 때문에 지식인들은 정치사회에서는 물론 일상적인 생활 속 세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박탈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힘도 없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들이다. 경제적 힘도, 사회적 힘도 가지지 못한 그들은 자기들 자신이 만사를 판단하도록 부름 받은 엘리트라고 자처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거기에서 그들의 도덕주의와 이상주의가 비롯되는 것이다. 거기에 또 지식인의 '독단주의'가 운위 된다. 그들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원칙, 그러나 매우 추상적인 원칙을 들먹거린다는 것이다. 이 원칙이란 물론 맑시즘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비난은 다시 한번 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맑시즘은 기본적으로 도덕주의와 대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식인들 자체에 이 모순이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별달리 거북스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어쨌든 사람들은 정치인들의 현실주의를 지식인들에게 보여주려 할 것이다. 지식인들이 자기들의 기능, 자기들의 존재 이유를 저버리고 '끝없이 부정하려는 정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잇는 동안, 일본에서건 프랑스에서건 정치인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조용히 재건함으로써 분별 있는 경험주의를 증거 해 주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지식인을 위한 변명 p.10
"지식인은 그가 누구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일도 없고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리를 배당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로 특정 지워진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지식인 그 자체는 어떤 결정의 산물 -의사나 교수 따위의 권력의 하수인처럼- 이 아니라 기괴한 사회가 만들어 낸 기괴한 산물이다. 아무도 지식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 ... 사실상 본래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순수한 전문 지식인으로 남아 있기가 불가능하다는 체험적 사실에 의해 지식인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이 그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 사실 그에게 있어서 사회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는 근본적으로 모순의 형태로서 그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단순히 '주관적으로' 문제 삼는 것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를 만들어 낸 일정한 사회 속에 끼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p.53
"지식인의 가장 직접적인 적은 내가 '사이비 지식인'이라고 부르려 하는 자들, 니장이 '집 지키는 개'라고 이름 지어 주었던 자들이다. 이들은 지배계급의 사주를 받아 자칭 엄격한 논리 -말하자면 과학적 연구방법의 산물인양 제시되는 논리- 를 통해 특수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려 든다. ... 사이비 지식인은 진정한 지식인처럼 '아니다'라고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아니다, 하지만...', 또는 '나도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라고 즐겨 말한다. 이러한 논리들은 진정한 지식인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p.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