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펨님. 노션 써 봤어요?"
몇 주 전, 대표님이 물어왔다. 노션? 한 2년 전쯤 트렐로의 대항마라는 이야기에 써 본 적이 있다. 에버노트를 주로 썼던 내게 노션은 좀 더 포괄적인 느낌이었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기엔 에버노트랑 큰 차이가 없었지만 협업용으로는 노션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더랬다.
나의 주 노션 사용처는 덕질이었다. 무언가를 덕질하고 SNS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션으로 스케쥴링이나 정리한 글들을 공유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템플릿을 직접 만드는 천재만재들 덕분에 데일리 루틴이나 위클리, 먼슬리 등을 이용하여 기록하거나 공유하는 것이 무척이나 편했으니까.
"노션 한 번 써 볼까요? 카톡이나 메일로는 업무 관련해서 소통하기 번거로운 면이 있는데 노션이 괜찮다네?"
"아, 써보는 거 좋죠. 디자이너님은 노션 써 봤어요?"
"네!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역시 오예의 젊은 피인 디자이너님은 노션을 작업용으로 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노션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님을 필두로 노션을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자유도가 꽤 높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갈팡질팡 하며 이것저것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 누군가 무엇을 쓰고 이동할 때 실시간으로 그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이동하는 것이 어쩐지 귀여워 그것만 보고 있기도 했다.
"아, 뭐야. 내가 아까 쓴 거 어디 갔어?"
"여기 이걸 누르시면..."
"여기 있네. 오오!!!!"
노션으로 각자의 업무 스케줄이나 진행, 업무에 필요한 부분 등을 공유한 지 몇 주가 지났다. 협업용으로 쓰는 노션은 혼자 쓰던 노션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마감일을 지정하고 댓글에 이러쿵저러쿵 첨언을 달기도 하고. 한눈에 파악하기가 쉬웠다. 업무에 대한 계획과 순서 등을 정리하다 보니 "이런 게 J의 삶이라는 걸까? 혹시 나 살짝 J일지도?"라며 코를 쓰윽 만져보는 "파워 P의 망상"은 번외의 즐거움이었다.
노션 사용 방법에 대해서 찾다 보니 "일잘러가 되기 위해서는 노션을 잘 써야 한다"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일잘러가 되기 위해 노션을 잘 쓴다기보다는 노션도 잘 쓰는 일잘러가 되고 싶어서 디자이너님께 물어봤다.
"우리 노션으로 또 뭘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 보니까 꽤 다양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던데. 여기 이 사람은 홈페이지처럼 쓰고 있어요. 포트폴리오 페이지같이."
"네, 템플릿 찾아서 디자인 적용하면 홈페이지처럼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차차 연구해서 한번 예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오, 당찬 포부를 외치는 우리 디자이너님, 멋져! 우선 기본 템플릿 안에서 커버와 아이콘 디자인만 바꿔 주셨는데, 그 변화만으로도 뭔가 엄청 있어 보였고 괜히 뿌듯했다.
여전히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노션을 쓰고 있다. 계속 새로운 기능을 찾고, 새로운 형태를 추가해보다 보니 우왕좌왕하는 것인데,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업무 스타일을 파악하고 존중해 가며, 추가 업무나 선행 작업 등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결과에 대해 컨펌하고 확인해 가며, 다음 스케쥴링을 이어 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말로 풀다가 꼬이기 쉽던 것들이 하나 둘 정리되어 가고 있다.
"노션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저 아까 노션 활용법 괜찮은 것 찾았는데 공유드릴게요!"
"노션 만든 사람은 노벨 오피스 평화상을 줘야 해요."
직장인 생활이 십수 년이나 됐지만, 새로 배워야 할 것은 계속해서 나온다. "내 회사 짬이 얼만데 내가 그런 걸 하고 있어?"같은 건 없다. 항상 새로운 게 궁금하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다. 그래서 그게 빛나게 사용될 그 순간이 왔을 때, 주저 없이 빛나게 활용하고 싶다. "이제야 노션을 써보는 거냐"라고 누군가 그랬지만, 뭐 어때. 이제라도 알아서 찰떡같이 잘 써먹어 주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럼 난 이제 오늘의 노션을 확인하러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