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겨울나기

by 오옐


우리는 하얗게 보이는 작은 결정체를 차가운 줄도 모르고 손에 쥐었다.

신이 나 뛰놀던 강아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쌓인 눈을 탈탈 털어내고

가만히 둘 재간이 없는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눈덩이는 구르고 굴러 눈사람이 된다.


나뭇가지에 차곡히 쌓인 눈이 우수수 떨어질 때면

그 아래 생겨난 하얀 방지턱이 툭하니 걸음을 멈춰 세운다.

눈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면 그대로 남겨두고 싶은 그대로,

오래 두고 싶은 작은 눈 뭉치들에 미소가 지어진다.


홀로 눈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하지 않다.

쌓인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거나,

저 멀리 강아지가 신나게 뛰놀고 있을지 모르니까.

눈을 뜰 새도 없이 눈 위를 걸으며 차가운 바람과 노랗게 내려앉은 빛을 마주하는 아침.

뒤돌아본 사이에 다정한 발자국과 그림자가 옅게 비치는 겨울을 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radio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