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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화음

by 오옐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집에 혼자 있을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돌이켜보면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는데 누가 들을까 눈치 보면서도 정말 많이 불렀었다. 나름 작게 부른다고 생각했지만 옆집에서는 '또 시작이군'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니, 한 번쯤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노래 동아리에 보컬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동아리방을 찾아갔다. 앞에는 선배 3명이 앉아 있었고 오디션 곡을 열심히 연습하긴 했지만, 여기서 바로 생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그때부터 당차게 준비해 왔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진이 난 듯 목소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뒤돌아서 노래를 불러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곤 벽을 마주하고서 오디션 곡으로 준비한 Sixpence None The Richer의 Kiss Me를 불렀다. 가사를 틀리는 건 겨우 면할 수 있었지만, 당연히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흑역사로 남기자 했는데 뜻밖의 합격 소식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기수의 여자 지원자가 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암튼 그때부터 과사가 아닌 동아리방을 더 열심히 드나드는 나의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통기타 동아리지만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카펠라로 노선을 바꾼 후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파트를 나누고 주로 The Real Group, 여행스케치의 노래들을 불렀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기분 좋은 상상'등. 노래들은 사뿐사뿐한데 생각보다 고음이 많아서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디션 때 선배 3명 앞에서 긴장했던 내가 어느새 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 공연도 하고 말이다. 이런 얘기를 할 때면 주변에서 노래 잘하는구나! 하고 놀라곤 한다. 하지만 정말 잘했다면 나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은 자신을 냉철하게 봐야 한다. 그냥 같이 노래하는 시간이 좋았고, 그때였기에 겁 대신 이유 모를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노래방을 자주 안 가기도 하고 상대방과 눈을 마주 보며 노래를 부르는 게 뭔가 오글거린다는 기분이 들어 스스로 더욱 어색해진다. 물론 그때도 어색하긴 했지만, 강제로(?)라도 눈을 마주치며 노래하면 신기하게 기분이 서로 업되고 즐거워지는 게 있다.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갑자기 언제 등장했는지 모르게 하나둘 모여서 같이 부르던, 조금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https://youtu.be/8N-qO3sPMjc?si=H1fvBjWhCP4Pdroy

Sixpence None The Richer - Kiss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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