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닝페이지를 돌아보며

2024 소소문구 여름 모닝단 기록

by 오옐


아침에 일어나 모닝 페이지를 펼쳐서 펜을 들고 맨 위에 오늘 날짜와 쓰기 시작한 시간을 적는다. 매일 3장 오늘의 감정을 적어 내려간 후 타임스탬프로 사진을 찍어 인증글을 올린다.

여름에 시작한 소소문구의 모닝단 활동은 내가 면접을 보는 날과 같이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바로 첫 출근이었다. 페이지 첫 장엔 면접을 보기 전 잘해보자는 다짐이 그 후로 갈수록 출근을 하느라 빠르게 흘러 써서 알아볼 수 없는 글씨와 일을 하며 짜증 나고 답답한 감정들 싫다 싫다의 연속이었다.


한 달쯤, 점점 일이 적응되어 갈수록 모닝페이지의 글씨들도 차분해지고 어떤 날은 쓸 말이 많아져서 이제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빠듯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의식적으로 뭔가를 하는 활동이 과연 나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궁금했는데, 떠오르는 대로 아무 검열 없이 적은 후 타임스탬프를 찍고 인증을 하는 출근길이 꽤나 뿌듯했다. 일을 하기 전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느낌이랄까.

생각해 보면 나는 매 순간 나를 검열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떤 매뉴얼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를 계속 확인해 가면서 그렇기에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면 더욱 긴장하게 되고 나를 몰아세우게 된다. 모닝페이지가 내게 가져온 변화는 좋은 감정이건 그렇지 않은 감정이건 일단 표출하기.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종이에 누가 볼 염려도 하지 않고 말이다.


예전의 나는 부지런함과 참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요즘 나는 신기하게도 조금씩 뭔가를 늘 하고 있다. 꾸준히 한 가지를 길게 하지는 않지만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런 조각들이 서서히 쌓여갈수록 촘촘하게 그물망이 되어서 위태로울 때, 휘청거릴 때의 나를 안전하게 받쳐주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진짜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시간은 늘 똑같이 흘러가지만 1월은 어쩐지 너무 새것 같아서 낯설고 꼭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사실 1월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다 리셋하고 뭔가 거창해야 할 것 같잖아. 새로움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일상은 시작과 자주 닿아있다. 새로운 일과 사람들, 해보지 않았던 워크숍과 처음 가보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까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24년 9월 16일의 모닝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11월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때, 내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나를 잘 지켜주기를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이유, 자연과 내가 바라보는 것에 대한 발견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

내년 하루하루가 모닝 페이지를 썼던 많은 날들의 하루만 같기를 바라본다. 어느 때보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너무나 절실한 요즘에는 더욱더 그렇기를 소망해 본다.


타임스탬프로 찍었던 모닝페이지 인증 사진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진 전시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