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이자 유일무이한 존재인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요즘 어때? 잘 지내?"
"요즘? 나 행복해"
행복하다는 말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무엇인가에 결핍을 느꼈다.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못해서 불안했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해서 수많은 감탄의 순간을 흘려보냈다.
삶의 기준은 '나'로 잡겠다고 해놓고선 주변을 흘긋거리며 끊임없이 비교하곤 했다.
내가 조금 나은 것 같다 싶으면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며 위안하고,
나보다 조금 나은 것 같다 싶으면 스스로를 한없이 초라하게 보고.
그런대로 만족하는 나와 타협하고 싶지 않은 나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만하면 괜찮지 뭐!'라는 생각과 함께
갈등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됐다.
존재는 다만 다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서,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열등감과 우월감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첫걸음이에요.
자신감이 없거나 열등의식을 갖는 것은 과대망상에서 비롯됩니다. 즉 인생이 굉장한 것이라고 여기는 허위의식과 자만심이 자신을 괴롭게 합니다. 존재라는 게 본래 특별한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존재의 의미가 없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잖아요?"
"의미가 없다면 세상사는 게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인간은 포함해서 모든 존재는 본래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낸 겁니다. 가치가 있다 없다, 선하다 악하다, 잘한다 못한다, 천당이다 지옥이다, 부처다 하늘이다, 하는 것은 다 인간의 의식이 만든 거예요.
(... 중략)
그러니 이제 그만 허위의식의 감옥에서 벗어나세요.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며 각오하고 다짐할 게 아니라 후회하는 나, 질책하는 나가 사실은 허위의식에서 비롯됨을 알아차리는 게 그 시작입니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그 과정에서 이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되는 게 행복이고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은 내가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렇게 될 때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조건과 상황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행복은 기껏해야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당연히 불행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법륜스님의 '행복' 中
그래,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뛰어나게 예쁘지도, 뛰어나게 특출 나지도 않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인 나.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오직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내가 제법 만족스럽다.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는 건 어렵고,
여전히 다음날 출근을 기약하며 잠드는 건 아쉽다.
여전히 나의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고,
여전히 고민 투성이다.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여전히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채로 서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이제는 아침에 마주하는 태양에 가슴 벅차 할 줄 안다.
이제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안다.
이제는 나의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채울까, 긍정적인 고민을 한다.
이제는 그저 내가 한 발 한 발 내디뎌 만들어가는 것이 내 삶임을 안다.
그래서 이제 제법 행복해진 나는
정말로 내가 되고 싶다.
그저 가장 나 다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때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에
감탄하면서 살고 싶다.
내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함께 있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삶에 충실하게,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금 행복하세요?
혹시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떠세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부족한 그대로의 내 모습.
온 우주의 유일한 존재인 나 자신을요.
인간관계, 금전문제, 취업준비 등등
현재에 불만족을 일으키는 있는 수많은 이유들, 상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2017.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