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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이 그려진 담벼락

허상과 기만, 선택지

by p id


벽돌 그림이 그려진 담벼락


그래 보이는 것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담벼락을 마주했다. 벽돌로 쌓은 담이었는데 멀리서 보니 묘하게 이질감이 든달까? 가까이 다가가니 벽돌로 만들어진 담이 아니라 벽돌 그림이 그려진 담이었다.


이전의 다른 글에서 '맥락'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인간은 맥락을 통해 대상을 이해하며 맥락과 동떨어진 대상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로 묶어 인식할 수 있는 담벼락과 건물 벽에 벽돌이라는 통일된 소재로 맥락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제는 의도를 행하는 방법에 있다. 맥락을 고려하라고 해서 꼭 주변과 똑같이 보이도록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기만

담벼락에 벽돌을 그린 이는 경제성을 이유로 벽돌을 새로 쌓는 대신 그림을 그려 넣었을 것이다. 벽돌처럼 보인다면 실제 벽돌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터다. 벽돌 그림은 과연 진짜로 경제적일까? 실제의 그것이 아니어도 괜찮은 걸까?


인간은 하나의 맥락 안에서 같은 맥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면 거짓된 허상을 들춰낸 실체를 마주할 때처럼 허무함을 느낀다.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할 퍼즐 조각과 모양이 달라 결코 들어맞지 않음에도, 퍼즐에 교묘하게 끼워져 있는 조각을 발견한 것처럼 억지를 부렸다는 인상을 준다. 대상을 보는 이로 하여금 기만과 속임을 당했다는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굳이 실제 요소가 아닌 실제 요소처럼 '보이도록'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럴듯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예산 내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더 나은 재료나 디자인 방법을 선택한다면 더 경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단순히 외관을 모방하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실제로 원하는 특성을 제공해 실용적일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달성해야할 목적이 명확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짜보다 가짜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직 '오직 보여지기 위한 목적'으로 촬영용 과일이 필요한데, 제철도 아니라 괜찮은 샘플을 구할 수 없을 때 사실주의적인 과일 모형은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선택

벽을 그냥 하얗게 칠하거나 노출 콘크리트로 두면 어떠한가? 색상도 한 가지만 쓰면 되고 인적 자원도 덜 필요하다. 보는 이를 기만할 여지도 없고 자연 그대로의 색과 소재이기 때문에 주변환경의 맥락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디자인을 할 때 과장되게 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장기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더 나은 대안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의문

얼마 전 동영상 플랫폼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중국의 작업자들이 울타리를 설치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인데, 철골로 울타리 기둥을 세우는가 싶더니 웬걸 그 위에 점토 같은 무언가를 덧바르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세심한 손길로 나무 무늬를 하나씩 조각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길 위에 세워진 수많은 울타리를 하나하나 조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여러 의문이 따랐다. 왜 진짜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조각하고 있는가? 저 인력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 진짜 나무로 울타리를 세울 때보다 저렴한가? 가짜 나무 울타리를 만들었을 때 진짜 나무로 만들었을 때보다 더 우수한 기능이 있는가? 그렇다면 왜 하필 나무 모양인가?


사람은 맥락을 맞추기 위해 종종 실제 요소가 아닌 실제처럼 '보이는' 요소를 만들곤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가짜를 좇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는 한 실제로 더 좋은 선택지를 볼 수 없다. 맥락을 따르기 위해 억지로 주변과 똑같이 만들 필요는 없다. 똑같아야 맥락에 녹아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기만하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실제처럼 보이는 요소가 아니라 예산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실제 요소 중에 맥락을 따르는 요소를 적용하면 된다. 세상에 선택지는 언제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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