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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Aug 09. 2024

당신이 떠난 뒤 남겨진 약들

살고자 했던 욕망의 증거만이 남아


어느 날 시부모님이 봉투 하나에 가득 담긴 갖가지 약을 가져오셨다.


"이거 성찬이가 먹던 약인데 보건소나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가져다주면 된다는 거 같더라"


시부모님이 들고 오신 봉투 이외에도 이미 집안 곳곳 남편의 약이 가득했다. 육신은 불길에 타 한 줌의 재로 돌아왔지만 그가 살고자 했던 욕망은 고스란히 남아 그대로 눈에 밟혔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약이었고 그중 60퍼센트는 진통제였다. 각종 마약성 진통제는 종류별로 받았었는데 펜타닐패치에 부작용(구역구토)이 있던 남편에게 맞는 진통제를 찾기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각종 마약성 진통제를 종류별로 처방받았다.


마약성 진통제 패치도 붙였다 떼었다, 이 약 먹다 저 약 먹다 어느 약이 효과가 있을지 몰라 마치 본인 몸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 같은 나날이었다. 새로 처방받은 약이 들을까 하는 희망으로 약을 먹었지만 매번 마약성 진통제도 듣질 않았다. 옥시코돈, 아이알코돈, 타진서방정을 먹어봐도 효과가 없어 결국 맨 처음에 처방된 마약성분이 제일 조금 들은 마이폴캡슐을 다시 먹길 반복했다.


나는 남편의 펜타닐 패치 부작용을 처음 발견하었는데 그가 구역구토를 시작했을 시기와 펜타닐 패치를 붙인 시기가 비슷했으며 그 당시 패치를 계속 붙이고 있지 않고 떼었던 기간에는 상태가 좋아 보였던 점, 다시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 구토가 시작되는 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남편은 패치를 붙일 때마다 상태가 나빠졌다.


나는 의학적인 용어도 제대로 알질 못하는 일반인이다. 나보다 그를 자세히, 오랜 기간을 들여다본 사람은 없었으나 나조차도 나의 짐작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펜타닐 패치는 암성통증환자에게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약이었고 먹는 진통제로 잡히지 않는 두통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권유로 두어 번 패치를 더 시도해보고 난 다음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남편은 펜타닐 부작용이 있었다.


2월 병원에 입원하고 그는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그래도 모르핀 주사로 통증을 조절하는 덕분에 집에서 만큼 힘들어하진 않았었다. 퇴원하고 싶어 하는 남편과 남편을 퇴원시키고 싶은 어머님의 뜻을 의사 선생님께 전하자 의사 선생님은 남편에게 펜타닐 패치를 붙일 것을 권했다.


"선생님 남편이 펜타닐 패치 부작용이 있습니다. 패치를 붙이면 구토를 해요. 제가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붙이고 지켜보죠"


나는 충분히 의사 선생님의 사정도 이해한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보호자가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고 본인이 상황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편은 패치를 붙이고 그날 저녁 바로 구토를 했다. 병원에 들어간 지 3주 만에 처음으로 하는 구토였다. 남편의 구토를 봉투로 받아내고 즉시 간호사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제가 담당 의사선생님께 남편에게 펜타닐 패치 부작용으로 구토가 있다고 말씀드렸었어요. 오늘 붙였는데 입원한 지 3주 만에 처음 구토를 했습니다. 패치를 떼고 싶어요"

"바로 뗄 순 없고 의사선생님께 여쭤봐야해요. 퇴근을 하셔서 답이 좀 늦으실 수도 있는데 전달해 드릴게요"


다음날,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셔서 커튼을 걷으며 바로 하셨던 말씀이 "펜타닐 패치 뗍시다"였다. 패치는 이미 그 전날에 다 떼어놓은 상태였다.


남편의 약봉투에는 다 붙이지 못했던 펜타닐 패치도 여러 장 있었다. 약을 버리는데도 어느 정도 정리하는 절차가 있다. 약을 쓰레기봉투나 음식물 쓰레기, 하수도에 그냥 버리면 안 되는 이유는 폐의약품이 하천이나 토양을 오염시켜 식물과 동물들에게 약의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섭취하는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쳐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항생제에 강한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발생할 수 있어 의약품은 반드시 폐의약품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이사를 하면서 남편의 약을 처리하질 못해 이삿짐에 그대로 넣어 들고 왔었던걸 부모님의 도움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이사 전에도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 아파 혼자 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2차 비닐포장지에 들어있던 알약들은 일일이 포장지를 제거해 봉투에 한데 모아두고 시럽약은 봉투째로, 가루약은 봉투를 뜯지 않은 상태로 다시 모았다. 약의 양이 방대해 정리하는데도 한참이 소요되었다.


처음 봉투를 보고 약이 왜 이렇게 많냐며 놀랐던 부모님의 감정은 많은 약을 정리하며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아이고, 박서방.. 살려고 이렇게 약을 많이 먹었는데.. 어찌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갔나.. "

아빠가 먼저 한탄을 하셨다. 뒤이어 엄마가 말을 거드셨다.

"사돈어르신들이 약 직접 정리 안 하시고 널 가져다 드려서 너무 다행이다. 나도  이 약들을 보며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이걸 사돈께서 정리하려면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겠니"

"맞아.나도 그래서 건드리질 못했었어"


그날 부모님은 약들을 모두 정리해 동네 행정복지센터 폐의약품 수거함에 다녀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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