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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에서 포항공대 열등생으로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해도 되는 이유

by 팽글

공부를 하다 지칠 땐 가끔 노량진 수산시장을 떠올렸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기로 다짐한 이후 6시에 꾸준히 일어날 수 있었던 비법이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서울에 있을 나'를 떠올리며, 한 번쯤은 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부터 열심히 사는 사람이 모여있다는 그곳을 생각하면 한 시골 소년의 야망이 다시 차오르는 듯했기 때문일까.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서울이 아닌 포항으로 가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서울 살이와 대학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다. 근처에 술집이라고는 20분 거리에 있고, 학년 정원이 360명 남짓인, 그것도 성비가 체감상 8:2 정도로 남자가 많은, 특히 과학고 출신 입학생이 과반이 넘는, 학업이 힘들기로 유명한 공대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미친 1학년 20학점 시간표


수학과 과학을 좋아한다고 여겼지만 입학 후 1학년 기초필수 과목인 미적분학, 일반물리를 들으며 순수 학문에 대한 궁금증은 단순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보다 똑똑한 과학고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며 앞으로 어떠한 연구를 해야 하는지, 아니 사실은 연구를 하고 싶었던 게 맞는지 미래에 대한 혼란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꿨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따라가기에 급급한 열등생이 되어있었다. 전교 1등에서 한 순간에 열등생이 되었다는 사실은 20살 새내기의 관점에서 꽤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공부를 엉덩이 힘으로 해왔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서관에서 끼니를 거르고 학업에 매진하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5일은 도서관에 갔고 가끔은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자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학업에 정말 진심이어서 도서관에 편하게 잘 수 있는 리클라이너가 비치된 휴식 공간이 있었다. 하루에 6시간씩 자며 도서관에서 생활하면서 새내기라기보다는 열등생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골 청년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속했다.


최선을 다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이가 실패하는 이유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여겼다. 소년의 지나친 자만과 자존심은 점점 부풀어 가는 부담을 짓이기고 누르고 업신여겼다.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없는 일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건강을 뒤로하며 대가가 아주 잔혹한 이름의 노력을 했다.


본인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반증은 참혹하게 드러났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폐가 독이 되어 천식을 낳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천식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몸 상태는 악화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집 앞 편의점에 가다가 숨이 차서 쓰러지거나 5분 정도 걷거나 활동을 하면 바로 호흡이 곤란한 정도였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숨이 안 쉬어져서 필기를 멈추고 강의실을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필기를 하던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주변에 나를 챙겨주는 부모님도 없었던 20살 소년은 온전히 그 시간을 홀로 감당했다.


KakaoTalk_20250302_020923810.jpg 천식 병원 사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니 학업을 지속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노력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이루지 못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성실한 생활에서 이탈하여 남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휴학을 하고 시골로 돌아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찬란할 줄 알았던 대학 생활이 멀리 어딘가로 떠나버렸다고 느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대가가 건강 악화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세상이 나에게 너무 각박하다며 속상한 감정을 혼자 방에서 토로했다. 무력한 자신이 미웠다.


그래도 역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몸을 회복하고 싶었기에 쓰러질 위험이 있어도 운동을 했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러 잠깐 나갔다가 10분 만에 길거리에서 쓰러져 부모님을 애타게 부른 적이 있었다. 다른 건 모두 견딜 수 있어도 엄마가 속상해하시는 모습은 견디기 어려웠다. 항상 열심히 살아왔던 기특한 아들이 대학에 가지 못하고 돌아와 힘들어하는 모습에 심히 마음 아파하셨다.


쓰러져도 버티고 운동하고 달렸다. 그저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부모님 눈에 기특한 아들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밖을 나섰다. 처음엔 10분도 버티기 어려웠지만 한 달 동안 열심히 약을 챙겨 먹고 운동했다. 30분 뛰기는 힘들긴 해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운동할 수 있게 되니 대학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엄마가 걱정하지 않는,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아들로도 말이다.


대학에 돌아오니 역시나 학업은 힘들었다. 전 학기에 하지 못한 공부도 마저 해야 했고 더 어려운 수학과 물리를 배워야 했다.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던 건강 상태가 학교에 돌아오니 여실히 드러났고 악몽이 반복됐다. 전보다 더욱 심한 몸상태가 이어지자 복귀 한 달 만에 도망치듯 학교에서 나왔다. 학교는 감옥이었고, 공부는 건강을 앗아가는 악마였다. 공부에 대한 혐오가 싹텄고 공황장애가 생겼다.


휴학 2회 차의 나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신적으로는 꽤 힘들었지만 공부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서서히 인지했기에 쓸데없는 잡념이 없었다.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해 주다 와야지, 조급해지지 않으며 충분히 쉬어야지 생각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조금은 편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되어있었다. 세 달 정도 편하게 쉬며 오랜만에 공부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공부를 열심히 잘하지 않아도 엄마는 나를 사랑해 주시며, 아빠는 나를 걱정해 주셨다. 그깟 공부가 대수냐며 부모님은 내 건강을 바라셨다. 어쩌면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대가 없는 무한한 사랑의 치유력은 상당했다. 살면서 가장 편한 마음가짐으로 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세상은 잘 돌아갔다.


KakaoTalk_20250302_021415154.jpg 롯데월드 캐스트 근무 사진


충분히 쉬고 나니 휴학을 알차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증 했던 서울에서의 생활을 꼭 하고 싶었다. 친누나가 대학을 다니며 어린 시절부터 내게 보여준 큰 세상인 서울을 직접 경험하려 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무작정 친누나가 살던 자취방에 들어갔다.

처음 하고 싶었던 롯데월드 캐스트에 지원해서 합격도 하고, 밤을 새보기도 하고, 한강을 걷기도 했다. 내가 만든 버킷리스트를 보며 하나씩 지워가던 도중 재미있는 항목을 발견했다.


새벽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보기


그날따라 잠을 설치고 있던 터라 그 문구가 유독 눈에 보였다. "잠도 잘 안 오는데, 이참에 다녀올까"하는 생각에 갑작스레 몸을 일으켰고 그렇게 첫 차를 탔다.

집 밖으로 나오자 괜스레 설레고 떨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일을 갑작스레 해보게 된다니, 이보다 설레는 일은 거의 없다. 마포구청에서 합정, 당산, 그리고 노량진까지. 이른 출근을 하는 이들을 스쳐가며 홀로 노량진 수산시장에 당도했다. 마치 처음 이 땅을 발견한 사람인양, 조심스럽고 신기하게 이곳을 둘러보며 주위를 기울였다.

그곳엔 수많은 이들이, 수많은 생명체들이 교차했다. 정적이지만 꽤나 생동감 있는 공간이었다. 새벽이라서 서늘하고 손님이 없지만, 가게 준비를 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경매장은 더욱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여기가 그들의 삶의 무대였다. 60대 어머님, 허리가 구부러진 80대 할머님부터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 이러한 멋진 일이 벌어진다는 게, 지브리 영화의 현실판 같다고 생각했다. 잠깐 내가 모르던 세계에 이방인으로서 여행하는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KakaoTalk_20250302_021939020.jpg 직접 찍은 노량진 수산시장 사진


노량진 수산시장을 나오고, 학원가를 둘러보다 보니 복잡했던 삶의 장면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첫 차를 타고 노량진 수산시장을 여행하는 버킷리스트를 해내 기뻤고, 어렸을 적 경험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눈으로 직접 보니 성취감이 몰려왔다. 사람들의 삶을 지시하며 마음속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작은 울림의 연속이 삶의 과정을 눈부시게 했다. 세상에는 공부가 다가 아니었다. 찬란하고 생동감 있는 광경이 실제 했다.


그렇게 담담하게 수산시장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받아들이며 다시금 한 곳에 가려져 있던 소년의 야망을 떠올렸다. 시골 아이의 마음속에 있던 소망이 이어져 생긴 작은 불씨가 더 큰 불꽃을 일으켰다. 삶은 경험이며, 경험은 파도의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가슴속 야망과 동심을 일깨우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으며, 그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공부를 잘하는 성실하고 멋진 청년의 모습보다 현재 나의 삶이 더 행복했고 값졌다.




P.S. 무한한 사랑으로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탱해 주시며 자식 뒷바라지 하시느라 몸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사랑스러운 엄마,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어도 멋지고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인 자랑스러운 아빠, 세상은 꽤나 넓다고 알려준 큰누나, 사소한 행복을 찾게 도와준 작은누나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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