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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슈슈 Apr 10. 2016

귀촌 단행(7)

퇴사, 이후의 삶

질문, 하고 계십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동네는 텅 빈 것처럼 한산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이 놀이터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 좀처럼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낮의 열기를 이기기 위해 놀이터 전경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면, 기분 좋은 바람이 오후 내내 서재에 드리웠다. 이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무거운 정적에 눌려 소파에서 잠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오후 시간을 통째로 날리기 일쑤였는데, 그만큼 달달한 낮잠에 빠지곤 했다(급하게 일어나야 할 일도 없었고). 그러나 꼭 다섯 시가 되면 원치 않는 소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함성이 놀이터를 가득 메웠던 것이다. 어느새 윗집 아이도 유치원에서 돌아왔는지, 뛰어다니는 발소리와 넘어지는 소리, 그리고 울음을 터트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내 방에 생중계됐다. 사실 아이의 뛰노는 소리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문제는 아랫집이었다. 아랫집에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한창 말썽을 피울 나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다그치는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거기에 뒤섞인 온갖 짜증과 욕설. 아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만 있을 게 아니라, 신고해서 구출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수위가 높았다.


어느 무더운 토요일 오후. 이날은 유달리 아주머니의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더없이 심한 욕설과 다그침이 아침부터 이어졌다. 새벽 늦게 잠이 들었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랫집에 내려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아주머니에게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아주머니는 일면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내게 ‘근데 지금 몇 시인데 아직도 자요?’ 하고 묻고는 그대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


그러게 지금 몇 시야?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었다. 시간을 알려면 컴퓨터를 켜거나, 시골에 내려온 뒤부터 무용지물이 된 채 방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핸드폰을 꺼내보아야만 했다. 빌어먹을,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해? 삶의 패턴이라는 게 사람마다 제각각인데!


한 방 먹인 듯, 혹은 한 방 먹은 듯한 아리송한 과정은 결국 시원찮은 결과로 이어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아주머니의 고함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참 괴로웠다.  생전 처음 겪는 층간소음 문제를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다.
그러다가 문득 ‘질문’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질문이 가진 힘에 대해 상당히 맹신하고 있던 터였다. 내가 처음 귀촌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지금 잘살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해답을 얻고 싶으면 정확한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라는 어느 책의 한 구절에 깊이 매료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자연스럽게, 의식의 흐름 속에 몸을 맡기듯 볼펜을 집어 들어 포스트잇에 이렇게 적었다.


“어찌 매일 그리 짜증을 내십니까? 아주머니, 행복하신가요?”


그리고 그 포스트잇을 아랫집 대문에 붙여놓았다. 그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고,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나는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아주머니의 고함을 듣지 못했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도 성량 큰 아주머니의 잔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 조용해서, 아랫집에 사람이 살고 있나 싶을 정도였다.
질문 하나가 가져온 이 놀라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들 층간소음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데 정말 이렇게 간단히 문제가 해결됐단 말인가? 잠시 우쭐한 기분이 들었고, 좋은 글감 하나 건졌다는 생각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주머니가 나의 진정성을 알아준 사실이 기뻤다.


다시 평온한 아침이 찾아왔다(남들에겐 오후라고 생각되는 시간). 예전보다 더 큰 가치가 느껴지는 평온함이었다. 그렇게 가뿐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식탁 너머 거울에 머리를 삭발 한 턱수염 주렁주렁 기른 사내의 모습이 눈이 들어왔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단지 무서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뭐 확실히 그랬을 것 같다. 그저 이 자리를 빌려 아주머니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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