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의 삶
도시(고향, 서울, 가족과 친구 등 어떤 말로도 대체 가능한)를 떠난 뒤,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일까?
편의 시설이 부족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 자차가 없으면 다니기 힘든 불편한 교통편? 모두 곤욕스러운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특별히 '인간관계의 협소함'을 꼽는다.
시골에선 동갑내기 친구나 비슷한 또래의 이성을 만날 길이 없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아주 어리거나 나이 많은 어르신이 대부분이고,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을 하느라 낮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지역의 젊은이들을 수용할 만큼 생산성이 받쳐주는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타지에 나가고 없어서 취직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인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곳에 내려온 뒤, 나는 먹고살기 위해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물탱크 청소부터 지게차 운전까지 종류도 퍽 다양하다. 단조롭게 키보드나 두들기던 서울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당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서울에서 만나던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재밌는 차이점 중 하나는 서울 친구들이 서른 너머 겨우 결혼할 준비를 하는 것과 달리 이곳 친구들은 대부분 한창나이에 이미 결혼을 했다는 점이다(심지어 고등학생 때 애를 낳고 자퇴한 학생도 있었다). 한 토박이 친구는 그 이유를 반농담처럼 '밤은 긴데 해가 지면 할 게 없어서'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과연 이곳에선 해가 지면 별로 할 게 없다.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막상 가봐야 왕래하는 사람 하나 없이 텅 비어 있긴 매한가지. 거기다 밤에는 시내까지의 물리적 거리가 훨씬 멀게 느껴져서 잘 나가지 않게 된다.
결국 한밤 중에 불쑥 찾아오는 절대 고독의 고통을 맨 몸으로 감내하는 일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어쩌면 이것이 귀촌생활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잡하고 매캐한 도시가 싫어 자유롭고 여유로운 귀촌생활을 꿈꾸지만, 사실 귀촌생활은 도시생활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오히려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삶은 계속 이어지고, 나는 여전히 외롭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적막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명확한 목표(개인적인 비전)와 지속적인 만남(커뮤니티)이 필수다. 그래서 귀촌생활을 하겠다는 분들에게, (내려가면) 빠른 시일 안에 직장부터 구하라는 조언을 꼭 해주고 싶다. 직장은 경제적인 부분을 보안해주기도 하지만,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임을 망각하지 않게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직장생활은 도시에서 늘상 해오던 일이다. 그런 생활을 귀촌 후에도 해야 된다면 굳이 도시를 떠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노동강도는 올라가고, 임금 가치는 떨어질 텐데 말이다.
물론 나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의 노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자 수단에 불과하지만(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지 않은 이상), 귀촌 후에는 자기주도적인 결정이 선행된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마음 의 부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이고, 귀촌 단행이 바로 그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이다. 고된 경험조차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내 귀촌생활이 행복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귀촌 후 직장생활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삼지는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 이야기가 내 작품에 녹아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었고,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