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의 삶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완전히 떠난 건 2008년도였다. 당장 쓸 생활비 마련부터 앞으로 먹고 살 궁리까지, 귀촌을 결행할 때는 보통 많은 준비가 필요한 법. 그런데 나는 일절 그런 고민들을 하지 않았다. 고민을 해봐야 답이 없을 것 같았고,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나같은 겁쟁이는 떠나면 안 되는 이유만 곱씹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귀촌 이후의 삶은 모두 불확실했다. 단지 이 순간 명확한 게 하나 있다면, 나는 서울이 싫다는 것,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나 낮잠 실컷 자면서 읽고 싶은 책 원없이 읽으며 살고 싶다는 오직 그 욕망 하나 뿐이었다. 사람은 떠나지 말아야 할 99가지 이유가 있어도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떠난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이 진리라고 믿는다.
당시 내 전 재산은 퇴직금과 마지막 월급 한 달 치를 모은 9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동안 월급의 반은 가족 생활비에 보태느라, 나머지 반은 온전히 날 위해 쓰느라 저축한 돈이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갚아야 할 빚도 없었고, 가족 모두 건강했으니까. 아, 여기에 무형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업계 7년 반의 근무 경력을 덧붙여야겠다. 이 재산은 서울을 떠나는 순간 휴짓조각이 될 게 뻔했지만, 내게 실업급여라는 한 줄기 광명과도 같은 희망의 씨앗을 보태 주었다.
귀촌을 위해 내가 한 유일한 행동은 미리 집을 구해놓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저곳 직접 답사를 다닐 여유가 있던 건 아니다. 게임 개발 일이라는 게 그렇다. 끊임없는 야근에, 집에 오면 지쳐 쓰러지기 일쑤. 언제 지방을 다니면서 살 집을 알아본단 말인가. 이 핑계 저 핑계 댈 게 아니라 우선 인터넷으로 마땅한 장소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지금은 직거래 카페도 많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검색창에 ‘부동산’을 입력해보았다. 그렇게 찾은 사이트 한 곳에서 전셋값 조건을 1000만 원 이하로 잡고 검색해보았더니 예상과 달리 여러 매물들이 주루룩 떴다.
그 중, 맨 첫 번째 게시물(그러니까 가장 저렴한 집일 테지)에는 장소가 충남이며,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짜리 아파트라는 정보 등이 적혀 있었다. 집 내부 사진은 따로 첨부되어 있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가격이었다. 놀랍게도 전세가가 700만 원에 불과했다. ‘사기 아니야?’ 그런 의구심도 들었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집을 구하고도 얼마간 쓸 수 있는 생활비를 보전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다른 매물은 볼 필요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