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이후의 삶
집 구하기
서울에서 목적지가 있는 터미널까지 버스로 대략 두 시간. 거기서 시내버스를 타고, 30여 분을 더 들어간 끝에 간신히 도착한 약속장소는, 여태껏 내가 꿈꿔왔던 작은 시골 마을의 전원 풍경이 한가로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주변으로 점점이 사과밭이 흩어져 있었고, 도로에는 자동차 한 대 다니지 않았다. 적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곳.
곧바로 전 세입자를 만나 방 내부를 둘러봤다. 짐이 빠져 있는 상태라 그런지 예상보다 멀끔해 보였다. 여담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아주 어렸을 때 살아봤다고는 하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외풍이 심한 주택에 오래 살다 보니 아파트에 사는 게 엄마의 소원이 될 정도였다. 비록 단층이었지만, 어쨌든 아파트 구석을 갖춘 이곳을 보니 내심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바로 그때, 주인집 아저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곤 대뜸 내 앞에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전 그저 집 구경하러 왔는데요?’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자기도 경기도에서 왔다며 다같이 모인 김에 그냥 계약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미리 떼온 등본을 꺼내보여주었다(뭔가 미리 준비들 하고 계셨던 기분이...). 이쯤 되니 아무리 대책이 없는 나라도 망설여졌다. 이제 막 첫 집을 보러 왔을 뿐인데, 덜컥 계약해버리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기에는 임대료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다시는 전국 어디에서도 이만한 금액에 이만한 집을 찾지 못하리라.
"그나저나 이 집은 왜 이렇게 저렴해요? 물이 새거나 하는 거 아니에요?"
“처음 받던 전셋값이 700만 원이었어. 그래서 지금도 그만큼만 받아.”
이천에서 쌀농사를 짓고 계시다는 주인아저씨는 사람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결국 거기에 넘어갔다. 집 구경 왔다가 졸지에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은 것이다.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적어도 2년을 살아야 하는 공간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이 계약부터 덜컥 하다니. 근처 생활 여건이 어떻고, 교통 편의는 또 어떻고, 동네 분위기나 이웃들은 어떤가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도장을 찍는 순간까지도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속은 후련했다. 이제 정말 내가 원하는 귀촌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어쩌면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그만큼 더 컸던 것은 아닐까.
서울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바로 이삿짐을 꾸렸다. 아빠가 선물로 냉장고를, 엄마가 책상과 소파를 중고로 사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내가 두어 달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리라고 믿고 계셨고(확신이 없었던 나도 내심 그럴 것처럼 행동했다), 아빠는 꼭 지금이 아니라 나이를 좀 더 먹고 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지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가 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이삿짐센터 차량에 짐을 실었다. 5톤 트럭이 가득 찰 만큼 제법 양이 많았다. 나는 서울에서 마저 볼일을 보고, 반나절 늦게 그 뒤를 쫓았다. 그날은 정확히 내 28번째 생일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