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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Oct 08. 2019

슈퍼맨이 필요해!

육아 에세이. 독박 육아의 간접 체험, 결국 아내를 살려야 한다

아빠가 육아를 한다면 과연 이런 모습일까? [출처 : 삼성화재 다이렉트 보험]


아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사진은 판타지다.

적어도 마이 유니버스에서는 그렇다. 복장도 불편해 보이고, 나도 동화책을 읽어주기는 하지만 저것이 대표적인, 또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육아의 실제 모습은 아니잖아?

저렇게 육아하는 것이 일상인 아빠가 있다면... 존경합니다. 비법을 가르쳐 주세요.

                        



  오늘 종례를 마치고 이후 스케줄을 떠올려 보았다.

  '음, 4시 40분에 교직원 연수 한 30분 하고 저녁 먹기 전까지 일 좀 하다가.... 저녁 먹고 나서는 6시 30분에 민준이랑 농구 일대일 내기 한 번 가볍게 이겨주고, 조금 쉰 다음에 방과후수업 수능 국어 기출 풀이 반 보강 수업을 1시간 정도 하고 나면 8시 30분에는 퇴근할 수 있겠네...'

  그리고 연수 이후 저녁 먹기 전까지는 생각한 대로 흘러갔다.

  '슬슬 저녁 먹으러 가보실까?' 민첩하게 움직이려고 하는 찰나, 카톡이 왔다.

                                         

남편, 몸이 너무 좋지 않아. 설거지, 빨래도 all stop ㅠㅠ,
애들 케어도 자신이 없다. ㅠㅠ

                            

사랑하는 아내님의 S.O.S였다. 식당으로 가려고 했던 나는 재빠르게 답장하고 집으로 가야만 했다.

계획했던 일정은 모두 취소, 출산이 바로 다음 주인 아내를 두고 저녁에 다른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던 것은 역시 무리수였다. 아내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해, 바로 집으로 향했다.


18:10

집에 도착했다. 들어가 보니 아내는 힘겨운 얼굴로 아이들에게 우유를 주고 있었다.

"아내, 들어가. 누워서 쉬어. 아무것도 하지 마."

진짜 이렇게 얘기했다. 아내는 나를 보고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표정으로 안방에 들어가 곧바로 누웠다.

두둥, 이제 아빠의 육아와 집안일이 시작된다.


18:10-18:30

옷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으면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나의 육아력 또는 집안 정리력을 쏟아부어야 할 곳을 찾아보았다.

거실, 엄청 지저분하다. 아이들 그림 조각 퍼즐과 그림 단어 카드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공과 모형 커피 머신, 뽀로로와 곰 인형 등도 외면당한 채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과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규리, 더 슈퍼 히어로' 책이 널브러져 있다.

혼란하다. 그래서 여기부터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마치 퀵실버(마블의 엑스맨 중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히어로)처럼 움직였다. 쓰레기들은 다 모아 버리고 장난감은 종류별로 바구니와 박스에 담아 차곡차곡 정리했다. 어느덧 거실이 깔끔해졌다. 어깨가 으쓱하다. 마침 아이들이 유튜브 키즈를 다 봤다. 나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해서 냉장고에서 포도 주스를 꺼내 한 컵씩 주었다. 먹고 나니 이번에는 TV를 틀어달랜다. 그래서 실랑이를 좀 했다. 첫째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둘째가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해야 할 집안일도 많은데 이 생떼를 계속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국 TV로 뽀로로를 틀어주었다.(자꾸 영상만 보여주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진다. 좋은 아빠가 아닌 것 같은...)


18:30-19:30

이 상황에서 저녁을 요리해 먹을 수가 없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차리는 것도 귀찮았다.(사실, 음식도 별로 없어서...) 그래서 거실을 정리한 직후 배달 음식을 시켜 놓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맛있는 돈가스 2개와 리뷰 이벤트로 주는 스파게티가 왔다. 둘째가 18:40부터 찡찡댔는데 음식을 보자 진정이 되었다. 배가 고팠던 것 같다. 애들 먹을 몫이랑 나와 아내가 먹을 거랑 잘 분류해서 담았다. 그리고 상을 펴서 같이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단무지부터 엄청 먹기 시작했고 첫째는 밥보다는 돈가스를, 둘째는 돈가스보다는 밥을 집중 공략했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 좋으련만, 둘째가 내 무릎에 앉아 밥을 먹는다. 그리고 막 흘린다. 흘린다. 흘리고 또 흘린다. 이미 내 다리는 반찬과 밥, 소스 등으로 얼룩졌다. 그래, 이런 것도 당연히 감수해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지. 우여곡절 끝에 첫째와 둘째가 어느 정도 밥을 다 먹은 후에 간단히 씻기고 아이들은 TV를 볼 동안, 나는 저녁 밥상을 정리했다.(아내는 계속 누워있는 거다. 다음 주면 출산이고 그래서 몸이 불편한 우리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한다. 정말 우리 둘 다 고생이 많다.)


19:30-20:30

빨래 바구니에 담겨 있는 빨래를 세탁기 안에 넣었다. 소요 시간은 약 45분, 세탁기 안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설거지를 했다. 달그락달그락 민첩한 손놀림으로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잘 담았다. 우리 집은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한다.(냄새도 안 나고 버릴 때도 깔끔하고 매우 좋다. 위생 관련하여 문제 생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정리하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2개나 다 차 버렸다. 그래서 신속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갔다 왔다. 아, 설거지하는 중간에 아이들이 자꾸 TV 앞으로 슬금슬금 붙어서 보려고 하길래 결국은 TV를 꺼버렸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반항하다가 나중에는 자기들끼리 그냥 놀더라. 그런 모습 보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집에 오니 어느덧 세탁기가 다 돌아가 있었다.


20;30-21:00

자, 이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반대편에 있는 건조기에 다시 집어넣고 돌리면 된다. 음, 한 20분 정도 기다리면 되는구먼. 그렇게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지려고 하는 찰나, 아이들이 과자를 달라고 하네?

찬장을 열어 과자 있는 거 다 보여주니 둘 다 집에 있는 것은 싫다고 도리도리 한다. 둘째는 또 떼를 쓰기 시작했다. 고육지책으로 그럼 김 먹을래? 하니까 둘째가 좋다고 그런다. 그래서 두 개나 꺼내서 줬다. 그걸 보고 첫째도 자기도 김 달라고, 결국 도합 4개를 과자 대용으로 줘버렸다.

  아이들이 김 먹는 잠깐의 평화 동안 누웠다. 한 5분 지났나? 띠링띠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건조기가 벌써 다 돌아갔구나. 일어나서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 안방 한구석에 몰아 놓았다. 원래는 하나하나 개어서 서랍장에 넣어야 하는데 도저히 이건 내가 지금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빨래를 갔다 놓으면서 눈에 보이는 집안일이 거의 마무리되었다.(눈에 보이지 않는 집안일은 더 있었지만)

정말 아내가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엄마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나 혼자 이 아이들을 기른다고 생각해 보면, 퇴근을 아이들 퇴원 시간에 맞춰서 정신없이 집에 오거나 픽업해서 온 다음, 혼자 집안일하면서 애들을 돌봐야 하는데 이것을 내가 매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계속하면 적응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21:00-22:00

집안일이 거의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애들을 재워야 한다. 애들이 빨리 잘 수록 내 개인 시간이 늘어난다.

아이들을 양치질과 세수시킨 다음, 옷 갈아입힌 후 얼굴에 로션을 발라준다. 매일 하는 연례행사이지만 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늘 경건하고 간절하다.

제발 빨리 자라.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둘 다 비협조적이다. 양치질하자 그러면 계속 도망치고, 그러면 나는 속이 탄다. 이것들이.....

차분하게 기다리면 언젠가 오기야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남자가 동굴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들거나 없어지게 된다.(그냥 피곤해서 자버린다.)

강제로 몸을 써서 하면 막 반항한다. 일춘기다. 엄청 운다. 그것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가 요새 떼가 엄청 늘었기 때문에 부담된다.

그럼에도 오늘은 후자를 선택했다. 첫째는 괜찮았는데 역시 둘째가 문제였다. 운다. 막 운다. 아 빠 빠빠빠 하면서 운다. 요구르트를 주니 안 울고 받아 마신다. 하지만 양치질을 다시 시켜야 했다.

둘째가 양치질 후에 방에 안 들어가고 방문 앞에 드러누워 떼를 쓴다. 결국에는 나도 화가 나서 울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럼 애는 더 운다.

그러다가 이리 와하고 손을 벌리니 와서 푹 안긴다. 아빠 품이 그리웠나 보다. 안기고 싶었는데 혼나니까 더 서러웠나 보다. 미안했다.

둘째에게 같이 잘까 하고 물어보니 응하고 대답한다. 같이 자고 싶어서 그렇게 떼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첫째랑 둘째랑 아내랑 나랑 작은방에 누워서 함께 잤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다 잠들었다.

그제야 나는 퇴근 후의 삶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폭풍과 같은 가정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느낀 것은, 첫째도 아내, 둘째도 아내, 셋째도 아내의 소중함이었다. 가정에서 함께 자녀를 양육할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엄마 같은 아빠, 그리고 아빠다운 아빠로서 함께 가정을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이번 주부터 셋째 출산 후 몇 주간은 이런 일과를 보내야 한다. 비록 슈퍼맨은 아니지만 슈퍼맨스러워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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