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나의 집으로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을 발견했다.
알베르 카뮈
한동안 글을 안 썼다. 하고 싶은 말이 잘 없었어서.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꼴값 떠는 거 같았기도 했고. 다들 잘 읽지도 않는 거 같기도 했다. 근데 어쩐지 갑자기 쓰고 싶어졌어.
내가 무슨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말하고 싶어졌어. 그래도 가르치려는 건 아니야. 사람은 가르침으로 바뀌지는 않거든. 열심히 가르치려 할수록 새어나가는 게 인간이더라. 그래서 나는 그냥 내 이야기나 하려고.
네가 자해를 하고 싶어 진다면, 차라리 얼음을 손에 쥐어. 특히 여름엔 절대 안 돼. 여름에 긴팔만 입고 다니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그리고 누군가 본다면 일하다가 다친 거라고 둘러대는 순간에 거짓말을 치게 될 거야. 거짓말에 둘러 싸인 네 본심은 더 상처 입기 좋아질 거고. 그럴 때마다 너는 너를 좀 안아줘.
몸이 피곤할 때 뭔가 하려고 하다가 실패하면 스스로 다독여줘. 손으로 가슴을 두들겨줘. 생각이 많아지면 3분 정도 호흡에 집중해야 해. 그러면 좀 덜해져. 그래도 생각이 많아지면, 그건 네가 울 때가 되었다는 거야. 애써 이성적인 척, 성숙한 척하지 말고 울어야 해. 백발 할아버지 안에도 어린애는 있어.
평생 너는 네 안의 어린아이를 안아주기 위해서 힘써야 해. 수치스럽고 두려운 기억 속으로 전진해. 누군가에게 도움 받을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내 완고한 욕심 속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어린 마음이 있던 것처럼. 네 안에도 그게 있어. 그러니 네 안에 버려진 그 어린아이를 향해 가. 그리고 안아줘. 그 아이가 바라는 건 고작 아이스크림 한 입이나 좋은 노래뿐일 테니까.
네 건강함보다 중요한 건 없어. 아프다는 이유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고, 수업을 못 간다고, 약속을 취소했다고 죄책감 가지지 마. 신은 네 아픔을 다독여줄 테니까. 너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 아니야. 사랑을 기억해. 너는 사랑받아 마땅해. 어떤 순간에도.
그러니까, 모든 게 네 결정과 관련 있다는 거야. 내가 어머니로부터 기시적인 예민함과 불안감, 피부 염증을 물려받아도, 짜고 단것을 먹어서 피부에 여드름이 올라오게 내버려 두는 건 내 책임이니까. 누가 네 입에 억지로 넣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하진 마. 거부할 수도 있어야 해. 누구의 권유이든.
신은 자주 침묵해. 쌍욕을 박아도. 근데 다른 말로 하자면, 쌍욕을 하든 뭘 하든 괜찮다는 거잖아? 이미 넌 용서받았어. 네가 널 용서해주기만 하면 돼.
좋은 기도를 하려고 하지 마. 차라리 소리를 질러. 싸워. 세상의 부조리함과 싸워. 너는 이미 이 뭣 같은 세상에 태어났어. 그리고 죽고 싶지 않다면, 말도 안 되는 쾌락 따위에나 네 몸과 정신을 주지 마. 네가 원하는 것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지도 마. 너를 누군가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열등감에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마. 무엇보다, 네 자신에게 주도권이 없음을 알아야 해. 너는 환경에 휩쓸려. 감정에 동요돼. 우울에 잠겨. 고통받아. 의미를 요구해. 하지만 세상은 침묵해. 그렇다면 싸워. 포기하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마.
그 무엇보다, 네 자신이 되려고 해. 누군가가 이끌어주려는 대로 살지 마. 그 사람이 어떤 권위에 기댄다 한들 한낱 인간일 뿐이야. 그 누구도 하늘 아래 너 같은 사람 없어. 너는 너로 살아야 해. 그것으로 충분해.
너는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어.
네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줄까 두려워하지 마. 동시에 누군가가 네 고통의 원인이라고 단정 짓지 마. 모든 인간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야. 세상만사가 혼잡스럽기 짝이 없어. 그렇다면 그 혼잡함을 사랑해 보려고 애쓰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
너는 거기 있어도 돼. 네가 지금 무슨 과거의 아픔으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하지 마. 실패라고, 성공이라고 단정 짓지 마. 너는 너일 뿐이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삶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는 너야. 신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 너를 성장시킬 거야.
삶이 막연해질 때가 있어. 죽고 싶어질 수도 있어. 부모님이 헤어질 수도 있어.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질 수도 있어. 네 친구가 널 모두 떠나는 것 같을 수도 있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 그럴 때면 기억해. 이것도 전부 지나갈 뿐이야. 이게 지나가면 너는 더 강해질 거야.
하지만 이 말이 위로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럼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마.
그냥 살아.
네게 주어진 하루를 차근차근 살아가. 꿋꿋하게.
무조건 버텨. 일어나는 아침이 끈덕한 우울감과 치솟는 무력감으로 인하여 눈물범벅이 된다고 해도. 눈을 감는 밤이 치욕스러운 수치감과 기억나는 죄책감으로 인하여 불안하기 짝이 없어진다고 해도. 살아가.
무조건 살아가.
네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
그 하루만 버티면 돼.
그 하루만 버티면 성공인 거야.
그것만 해도 충분해.
잘하지 않아도 돼. 힘내지 않아도 돼.
그렇게 되면,
밤하늘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에 비추인 달빛이 감사히 여겨지는 때가 와.
입에 씹히는 소산물들의 풍요로운 생명력이 막연하게 좋아지는 때가 와.
누워서 올려다보는 높은 하늘이 움직이는 걸 보고 풍요로운 기쁨이 찾아오는 때가 와.
어제 피어오른 꽃이 오늘 생생하고 푸르게 살아있는 걸 보고 웃게 되는 때가 와.
눈 덮인 산골짜기에 합장하듯 걸어가는 수풀들이 나부끼며 춤추는 것에 감탄하는 때가 와.
모든 게 그저 그 자체로 좋아지는 때가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