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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05. 2023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 몇 살이냐고 묻는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서로의 관계 설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으면 형이 되고 언니가 된다.

동생으로 지내는 것보다 형으로 지내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래서 기왕이면 상대방보다 한 살이라도 더 많기를 원한다.

설날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먹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두 그릇을 먹기도 했다.

그러면 두 살 더 먹는 줄 알았다.

나이가 어리면 제약도 많다.

“애들은 가라!”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애들이 끼어들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극장에서 영화를 고를 때도 그렇고 고급 식당에 들어갈 때도 그렇다.

나라의 일꾼을 뽑는 선거 때도 나이가 어리면 투표를 할 수 없다.

빨리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눈치를 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줄 알았다.

신분증을 보여주며 내 나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가 빨리 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제는 나이를 그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날이 되어도 떡국을 안 먹는다.

그러면 나이도 먹지 말아야 하는데 떡국을 안 먹어도 나이는 꼬박꼬박 먹는다.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내 나이가 몇이더라’ 헤아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이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내 나이가 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도 깜짝 놀란다.

벌써 나이가 꽤 많아졌다.

어릴 때는 나이가 많으면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많아지면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지면 여기저기 쏘다니는 것도 못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못하고, 돈을 쓰는 것도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정말 나 자신이 불쌍할 것 같다.

누가 내 나이를 싹둑 잘라서 가져가 버렸으면 좋겠다.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제는 나이를 그만 먹고 싶다고들 한다.




정말 나이를 많이 먹는 게 안 좋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했던 인물이 있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였던 대로 질문을 던진 철학자가 있었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라고 하는 로마시대의 철학자이다.

그의 저작인 <노년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우리는 나이 드는 것이 안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나이 드는 것을 안 좋아하는 이유는 대략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둘째로,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져서 힘에 부친다.

셋째로, 노년이 되면 육체적인 쾌락을 누리기 힘들다.

넷째로, 노년이 되면 죽음이 눈앞에 곧 다가올 것이다.

키케로는 사람들이 나이 드는 것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 네 가지 두려움들이 사실은 너무나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이 들어 노년이 되는 것도 매우 좋은 것임을 알려주었다.




첫째, 노년이 되었다고 해서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들을 키워내는 일이라든지, 정신적인 면에서의 발전을 이루는 일 등 노년의 때에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둘째, 노년이 되어 체력적으로 힘에 부친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천천히 하면 된다.

셋째, 노년이 되어 쾌락을 누릴 수 없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축복이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유익하게 쓰면 된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 좋다고 하는 것은 정말 뭘 모르는 소리다.

젊은 사람도 죽고 아이도 죽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매일 죽음 앞에서 살고 있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을 더욱 원숙하게 살 수 있는 시기이다.

키케로는 이렇게 노년 예찬론을 펼쳤다.

키케로의 글들을 읽다 보면 내 나이가 가장 행복한 나이라는 생각에 빠진다.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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