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 내 내부반에는 나를 포함해서 5월에 입대한 동기가 네 명 있었다.
그리고 우리보다 한 달 앞선 4월 군병이 두 명, 한 달 후 후에 입대한 6월 군병이 한 명이었다.
내무반 인원이 15명 정도 되었고 말년 병장도 여럿 있었다.
쫄병들의 입장에서는 하루속히 말년 병장들이 제대하고 그 대신에 후임병들이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래야 자신도 한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한 달 밑의 후임병은 두 달이 지나도록 후임병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내무반의 가장 궂은일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나처럼 동기라도 여럿 있으면 일을 나눠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녀석은 동기 하나 없는 참 불행한 처지였다.
그러다가 두 달이 지나서 두 명 그리고 또 한 달 지나서 두 명, 총 네 명의 후임을 두고 어느덧 일병으로 진급도 하였다.
군 복무 반년 만에 내부반에서 중간 위치 가까이 올라가게 되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나 보다.
하루는 보초를 서러 가면서 내무반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막내에게 “너, 내가 보초 근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잠자지 말고 있어.”하고 우스갯소리를 남기고 갔다.
물론 농담이었다.
보초 근무 끝나고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잤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중대장이 이등병들만 모아서 교육훈련을 하였다.
그 자리에서 혹시 내무반에서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망설이지 말고 쪽지에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였다.
일명 소원수리(訴願受理)였다.
흔히 있는 일이었고 대부분 불편한 점이 없다며 빈 종이로 제출한다.
그런데 하필 우리 내무반의 신입병이 쪽지에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적었다.
선임병의 이름과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말을 들은 자신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도 적은 것 같다.
며칠 후 일과가 끝나고 내무반으로 복귀해서 씻고 청소하면서 저녁식사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대장님께서 우리 내무반으로 오셨다.
“OOO이병! 더블백 싸! 영창이다.”
그리고는 우리 내무반원들을 다 집합시키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셨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소원수리를 적은 후임병을 보니 고개를 처박고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내무반원들이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통하지 않았다.
대대장님은 굉장히 분노하고 계셨다.
그렇게 그 녀석은 며칠간의 영창을 다녀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영창갔다 복귀한 날 그 녀석은 곧바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그때 우리 내무반은 다시 한번 혼동 속에 빠졌다.
이번에도 대대장님이 직접 내무반에 찾아오셨다.
그때 내가 손을 번쩍 들어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짐승도 어디 갈 때면 밥 한 끼라도 먹이고 데려갑니다. 지금 저녁식사 시간인데 밥이라도 먹이고 영창을 보내든지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을 하는데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군대에서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후임병인데 그렇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의 말도, 우리의 소원도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후임병은 영창을 다녀온 날 부대 안의 다른 대대로 전출되었다.
소원수리를 작성한 그 쫄병을 바라보는 내무반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 녀석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녀석은 내무반에서 얼굴을 펼 수 있었다.
전출된 후임병은 진급이 되면서 종종 우리 부대를 찾아왔다.
그는 운전병이었고 우리는 정비부대였으니 여건만 맞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었다.
그 후임을 볼 때마다 밥 한번 같이 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도 아물어갔는지 그 녀석은 자신을 고발한 후임병의 얼굴을 보면서 농담할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게 되었다.
물론 후임병도 자신 때문에 고생한 고참의 얼굴을 조금씩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둘 사이에 서로 마음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얼굴 한번 봤으니까 됐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미안해하지 마. 괜찮아.’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언젠가 그 둘도 그랬을 거다.
“밖에 나가면 밥 한번 같이 먹자.”
그리고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괜찮고. 다 지나간 추억이니까.
그런데 그 후임병들 얼굴 한번 보고 싶다. 밥 한번 같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