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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pr 20. 2023

이웃집에 대해서는 그리움과 어색함 사이에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첫 회의 시작 부분에서 덕선 엄마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선아! 밥 먹어라!”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이제는 골목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런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렇게 외쳐대는 엄마들도 없다.

아니,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골목도 없다.

아랫집과 윗집이 반찬을 나눠 먹는 일도 없고 밥 먹을 때가 되었다고 해서 친구 집에 불쑥 찾아가서 같이 밥 먹는 알도 없다.

집 밖으로 소리가 나가는 것은 민폐가 되었다.

우리 집 식구들의 목소리는 우리 집 현관 안에 머물러 있어야 예의 바른 집이다.

그런 시절이 되었다.

새로 이사를 왔다고 해서 옆집에 떡을 돌리는 일도 이제는 없다.

나도 전에 떡을 돌리다가 괜히 이웃집에서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이길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줄 알았다.

그 후로 나도 옆집에 관심을 끊고 산다.

물론 옆집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열흘쯤 전에 옆집이 이사를 나갔다.

그런데 새로운 가족이 이사 왔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침에 보니까 옆집 문 앞에 택배 박스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렇다면 사람이 있다는 증거일 텐데 여태껏 인기척이 없다.

그나마 이웃집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때가 있다.

어쩌다가 계단에서 마주칠 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게 되었을 때, 그리고 리모델링 공사를 하느라 양해를 구해야 할 때 정도이다.

그 외에는 봐도 모른 척한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무표정하게 딴 곳 쳐다보기 시합을 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평생 살지도 않을 텐데 괜히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는 무언의 약속을 한 것 같다.

나하고 이웃집 식구들 하고는 하는 일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다.

괜히 말을 걸어봤자 얻을 것도 없다.

고작 한다는 말이 “안녕하세요?” 정도이다.

도시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이렇다.

우리 이웃의 모습이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오래된 사전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 되었다.

우리 집과 옆집 사이는 굉장히 가까이 붙어 있다.

고작해야 벽돌 두세 장 두께의 벽이 놓여 있을 뿐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옆집의 텔레비전 소리도 들리고 드르렁거리며 잠을 자는 아저씨의 코골이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이 벽이 옆집과 우리 집 사이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옆집과 몇십 미터를 떨어져 있어도 굉장히 가까이 지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친척처럼 여겨졌다.

웃어른에게 인사를 안 하면 예의 없다며 야단을 맞기도 했다.

어른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어느 집 아이냐고 물어볼 때가 제일 겁이 났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을 때면 동네 어른들이 엄한 꾸지람을 하기도 하셨다.

집 안에서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집 밖에서는 마을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




이웃과 서먹하고 어색한 관계가 된 것은 아마도 높은 집에 살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마당이 딸린 1층짜리 집에 살 때는 옆집과 쫑알거리며 살았다.

그런데 같은 번짓수 안에 내 발바닥 밑에 누군가 살고, 내 머리 위에 누군가 살게 되면서 위아래집과 서먹해진 것이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나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있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때는 그 말이 진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도 내 머리 위에 어느 가족이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을 테고 내 엉덩이 밑에 누군가 자리를 깔고 누워 있을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밑에도 사람이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서로 어색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예전처럼 마을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예전처럼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리움과 어색함 사이에서 적당히 선을 그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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