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by 박은석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계절이다.

예년보다 날씨가 일찍 더워졌다.

그 여파로 봄꽃들도 보름이나 먼저 피었다 지고 있다.

산의 나무들은 연초록색 이파리들을 뻗어내고 있다.

그제와 어제가 다르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만큼 초록의 물결이 날마다 더해가고 있다.

꽃구경을 가자고 모임마다 난리가 났다.

지난 3년 동안은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서 꽃구경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일부러 피해서 다녔다.

꽃구경을 가면 꽃이 많은 만큼 사람도 많다.

꽃구경을 갔지만 사람 구경만 하다가 오는 경우도 있다.

하얀 목련을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다투듯이 피고 진다.

이미 벚꽃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일찍 피고 졌다.

다른 봄꽃들도 일찍 지지 않을까 초조한 마음에 꽃구경을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웬 꽃구경을 그렇게 쫓아갈까? 꽃에게서 얻는 위안이 있기 때문이다.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긴 긴 겨울을 보내면서 어디 내 몸을 따스하게 맞이하는 자리가 없나 찾았었다.

좋은 자리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좋은 자리가 나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나중에 온 사람과 경쟁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의자놀이하듯 살아왔다.

모두가 자기만의 의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의자는 늘 부족했다.

경치 좋은 곳에 가더라도 먼저 앉을 자리가 있나 두리번거려야 했다.

앉을 자리가 없으면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그 자리를 피해줘야 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앉을 자리가 없으면 어색한 그림이 되고 만다.

자리가 사람을 가렸다.

어느 곳에서나 자리에 앉은 사람과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되었다.

나의 이름보다 내가 앉은 자리가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내 이름보다 내가 앉은 자리의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그렇게 숱한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세상이 다 그렇게 차별을 하는 줄 알았다.

사람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고 배웠다.

나쁜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다.

나쁜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그런데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고 하니 무척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사귀게 되었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책 읽기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책을 가려서 읽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좋은 책을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나쁜 책은 읽지 말라고 했다.

나쁜 책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서점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나쁜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쁜 책은 걸러서 읽어야 하는데 나쁜 책을 찾을 수가 없으니 무척 난감했다.

하는 수없이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모두 다 좋은 책이었다.




내 경험상 나쁜 사람도 없고 나쁜 책도 없었다.

내가 잘못 배운 것 같았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분명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뿐 사람'인 것 같았다.

'나쁜 책'이 아니라 '나뿐 책'인 것 같았다.

나뿐인 사람, 나뿐인 책.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주위를 둘러보니 저마다 '나뿐'이라고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나와 너가 확실히 구별된 세상이었다.

나의 영역과 너의 영역을 지키느라 굉장히 긴장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가까이에서도 반기고 먼발치에서도 반겼다.

오래 앉아 있어도 반기고 앉을 자리가 없어도 반겼다.

사람들이 왜 꽃구경을 가는지 알 것 같았다.

꽃은 나뿐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너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꽃을 보며 깨닫는다.

'나'뿐이라고 하는 우리도 모두 '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