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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03. 2023

그의 기쁨으로 같이 웃고 그의 슬픔으로 같이 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그 유명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구호단체에서 기부금을 모금하러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온다.

그러나 스크루지는 자신의 돈을 들여서 남을 돕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스크루지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가난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가난하게 된 이유는 게을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 싫었다.

자신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정성스럽게 돈을 벌었는데 그 귀한 돈을 게으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설령 그 가난한 사람들이 배가 고파서 굶어 죽게 되면 그게 오히려 사회를 위해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시에 인구가 너무 많은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서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인구 과잉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들도 사라지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스크루지에게 유령 셋이 나타나서 스크루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스크루지가 어렸을 때부터 구두쇠였던 것은 아니다.

그도 순수했던 과거가 있었다.

과거의 모습에 한 번 울컥했던 스크루지에게 두 번째 유령은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가난한 일꾼의 집을 보았는데 그 가정이 너무 단란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정에는 어린 장애아들이 하나 있었다.

꼬마 팀이었다.

스크루지는 그 꼬마 팀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 꼬마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유령의 대답은 썰렁했다.

그 꼬마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렇게 가난하고 병약한 아이들은 빨리 죽고 없어지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구과잉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스크루지는 얼마 전에 자신이 인구과잉의 문제를 운운하면서 가난한 사람의 생명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런 스크루지에게 유령이 네가 뭔데 어떤 사람은 살아야 하고 어떤 사람은 죽어도 좋다고 하느냐고 야단치듯이 말을 했다.

하나님의 눈에는 저 가난한 아이들 수백만 명보다 스크루지가 더 값어치가 없을 수 있다고 했다.

스크루지가 사람을 평가하면서 했던 말들은 나뭇잎 위에 있는 벌레가 먼지 속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쓸데없는 생명이 너무 많다고 구시렁거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스크루지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막연하게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했을 때는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들의 생명도 하찮게 여겨졌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들여다보고 애착을 갖게 되니까 그들의 생명이 너무 귀하게 여겨졌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쓰인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도와달라고 부르짖어도 내 귀에는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고민과 아픔이 꼭 나의 고민과 아픔처럼 여겨진다.

그들이 남이 아니라 내 가족이요 내 형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집과 일터를 아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남남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내 곁을 지나간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냉큼 달려가서 손이라도 한번 잡고, 악수라도 찐하게 할 것이다.

그의 기쁨으로 같이 웃고 그의 슬픔으로 같이 마음 아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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