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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6. 2020

나뭇잎은 위대한 스승이다


가을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와서 거리에 이른 낙엽이 뒹굴기 시작했다. 아직 여름의 온기가 조금은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달력은 10월을 가리키고 있다. 낙엽이 떨어질 시기가 되었다.


봄, 여름을 지나는 동안 넉넉하게 햇빛과 비를 받아서 줄기와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준 나뭇잎들은 한 해의 사명이 다 끝나가는 줄을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며칠 사이에 나뭇잎들은 마지막 생명줄을 끌어올려 자신의 몸을 울긋불긋 물들이고 있다. 불그레한 빛깔을 띠며 아직은 살아 있다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이파리가 가지에 붙어 있는 동안에는 쉽사리 가지를 꺾지도 않고 이파리를 떨구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뭇잎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자 사람들도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제 곧 단풍의 물결이 설악산에서부터 파도치듯 백두대간을 훑어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동장군도 곧바로 쫓아갈 것이다.

설악산에 첫눈이 왔다는 소식이 금세 들릴 것이다.

그 전에 나뭇잎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사명을 완수하고 장렬하게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떨어진 이파리라고 보잘것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비록 생명은 다했지만 늦가을 가로수 길에 빛깔을 입혀주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로 운치를 더해준다.

낙엽 태우는 냄새는 고향의 냄새로, 그리움의 냄새로 코끝을 울린다.


어디 그뿐인가?

떨어진 나뭇잎은 나무 밑동에서 썩어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어준다.


김광균 선생은 낙엽을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했고, 이어령 선생은 ‘퇴색한 생명의 조각’이라고 했는데, 나는 낙엽이 어린 생명을 덮어주는 배냇저고리처럼 보인다.


낙엽이 수북이 덮이면 나무는 참 따스할 것이다.

그렇게 삼천리강산 산자락마다에 두툼한 이불이 덮이면 추운 겨울도 포근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낙엽을 이불 삼아 산짐승들이 늘어지게 단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그 낙엽 아래서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아서 알콩달콩 겨우살이를 이어갈 것이다.


어느 산골 초막의 불 꺼진 아궁이에서는 낙엽이 불쏘시개가 되어 물도 끓이고 밥도 짓고 구들장도 뜨뜻하게 데워 줄 것이다.


천지의 생명체들이 보통 살아 있을 때 도움을 주고 죽으면 버려지는 게 다반사인데 나뭇잎은 살았을 때에나 죽어 낙엽이 되었을 때에나 언제나 모두에게 도움을 끼친다.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내던져 다른 생명들을 살린다.

굉장한 희생이고 대단한 사랑이다.

나뭇잎이 사람이었다면 벌써 ‘의인(義人)’ 소리를 열 번도 더 들었을 것이다.


말 못하는 저 이파리들도 생명을 살리고자 손을 흔들고 몸부림을 치는데 나는 오늘 몇이나 살렸나 모르겠다.

내 경거망동한 행동과 사리분별의 미흡함 때문에 다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내 큰 목소리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 아들을 보면 목소리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기는 삼국지에서 보니까 장비도 그 큰 목소리로 적병 몇 명을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걸어 다니는 무기인 셈이다. 말과 행동으로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한다.


내가 지나가고 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밝아져야 할 텐데, 오히려 내가 지나갈 때마다 세상이 더 어두워질까 두렵다.

나뭇잎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비결을 알려달라고 사정을 한대도 나뭇잎이 가르쳐주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나뭇잎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라서 하기도 버겁다.

나뭇잎은 범접하기 어려운 위대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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