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 왕립 극장의 음악회가 끝나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 막 연주를 끝낸 지휘자는 잔뜩 긴장한 채 목석처럼 서 있기만 했다. 지휘자를 바라보던 연주자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환호에 지휘자가 돌아서서 인사를 하며 답례를 해야 하는데 지휘자는 마치 발이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관중들은 더 큰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아마 지휘자가 너무 지쳐서 숨을 고르나 보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휘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이러다가는 관객들이 지휘자의 비매너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합창단원 중 한 사람이 내려와서 지휘자의 몸을 청중들에게 돌려세웠다. 그때서야 지휘자는 청중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음악의 성인(樂聖) 베토벤이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찬가>를 처음 연주하던 날의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 베토벤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3년 전 서른두 살 젊은 나이에 귀에서 피고름이 쏟아지는 심한 중이염을 앓고서 청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관객들의 환호도, 박수소리도 듣지 못했고 그저 자신의 곡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걱정만 하고 있었다.
작곡가에게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음악을 그만두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한 고통과 좌절감이 밀려와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두 번씩이나 유서를 쓰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약한 몸,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알콜중독자인 아버지, 소년가장으로 동생들을 돌본 세월, 그리고 청력상실까지.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죽고 싶었지만 그러나 음악을 놓을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아픔을 견디면서 그는 <환희의 찬가>를 작곡해 냈다.
악기들로만 연주하던 교향곡에 합창이 들어간 것은 이 음악이 처음이었다. 지상의 모든 악기와 최고의 악기인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합쳐서 천상의 찬가를 만들어내려고 한 베토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찬송가에 ‘기뻐하며 경배하세’라는 제목으로 이 곡을 실어놓기도 하였다. 들을 때마다 부를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마치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함께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곡은 나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독재에 반대하여 자유와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이 불렀다.
“내 삶을 구원한 것은 음악뿐이었다.”라고 고백한 베토벤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면서 다시 새롭게 살아보려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꽉 막힌 상황 속에서 희망을 꿈꾸는 것은 허무맹랑하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는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일들이 얽히고설켜서 삶을 만들어낸다. 오늘은 내리막길을 걷지만 내일은 오르막길일 수도 있다.
앞이 안 보인다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만은 없다. 어차피 발걸음은 내디뎌야 한다. 앞이 안 보이기에 아무 데나 발을 옮길 텐데 그 발걸음이 기적의 발걸음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베토벤은 귀가 멀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서 자기 마음대로 작곡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이제껏 들을 수 없었던 <환희의 찬가>가 탄생한 것이다.
힘들어도 꿈은 꿀 수 있다. 꿈꾸는 것은 누가 빼앗아가지도 못한다.
기왕 꿈꿀 바에는 환희의 찬가를 꿈꾸자.
다 잘 될 것이라고 꿈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