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시험에서 낙방한 적이 거의 없다.
합격선을 간당간당 넘어가더라도 그 선 밑으로 떨어지기는 싫었다.
그런 내가 무려 12번이나 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내 인생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그 시험은 바로 1종 운전면허 실기시험이었다.
물론 이론 시험은 단번에 합격했다.
그런데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대학생활을 잠시 접고 휴학을 해서 고향에 돌아가 있던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이 너나없이 운전면허증을 취득해 있었다.
나는 고작 오토바이 면허증이나 가지고 있었다.
친구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탈 때면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슬금슬금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깟 운전면허증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경쟁심에 결국 면허증에 도전했다.
친구들은 공터에서 한번 연습하고 가면 된다고 했다.
자기들도 그렇게 해서 면허증을 땄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엄청 강했던 때였다.
그들과 같은 환경에서 시험을 치른 후 보란 듯이 합격하고 싶었다.
인적이 드문 들판을 택해서 자동차 연습 장소로 삼았다.
운전을 잘하는 매형이 내 일일 교관이 되어주었다.
시동을 켜고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밟는 연습을 했다.
기어를 넣고 핸들을 꺾고 전진과 후진 연습도 했다.
조금 서툴긴 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배울 것은 다 배운 것 같았다.
과감하게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떨어졌다.
밟지 말아야 하는 선은 죄다 밟았다.
전진하면서 밟고 후진하면서 밟았다.
T자 코스에서도 밟았고 S자 코스에서도 밟았다.
한 번 선을 밟을 때마다 한 주간을 기다려야 했다.
차라리 학원에 가서 제대로 배울 걸 괜히 독학의 고집을 피웠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는 운전면허 시험을 본다는 말도 못 꺼냈다.
일주일마다 면허시험장을 찾아갔는데 그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맑은 날에도 시험을 치르고 흐린 날에도 시험을 치렀다.
비가 오는 날도 있었고 계절이 바뀌어 눈이 오는 날도 있었다.
떨어지는 게 습관처럼 다가오던 어느 날 드디어 코스시험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운전석에 앉았는데 너무 익숙했다.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후진 기어를 넣었는데 오른손으로는 핸들을 돌리면서 내 눈은 백미러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 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백미러를 쳐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조바심을 내며 바퀴가 노란 선에 걸치지 않았나 쳐다봤었다.
그런데 하도 많이 낙방을 해서 그런지 그날은 백미러만 봐도 다 알 수 있었다.
모든 코스를 무사히 통과하고 나왔다.
“합격입니다.”
그 한마디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별로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이렇게도 쉬운 일에 왜 그렇게 떨어졌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면허시험장을 나오던 그날의 내 마음 상태를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었다.
합격의 기쁨보다 더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시험장에서 조급하지도 않았고 떨리지도 않았다.
마치 일상생활을 하듯이 자연스러웠고 평안했고 편안했다.
어디서 이런 마음이 나왔을까? 그건 여러 번 떨어지면서 생겨 난 마음이었다.
시험에 낙방한 적이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었다.
시험에 낙방한 적이 없는 사람은 이런 여유로움을 모를 것이다.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감만이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떨어져 본 사람만이 누리는 여유가 있다.
많이 떨어져 보면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지 그 길이 보인다.
그러니 떨어지는 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떨어지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고 새로운 앎이다.
백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다.
아흔아홉 번 떨어져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여유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