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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29. 2023

오직 딱 한 번의 강의


죽음학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가 아직 유명세를 타기 전의 이야기이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던 그녀에게 우연한 기회에 강의 청탁을 받았다.

원래는 콜로라도대학 정신생리학연구소 소장이 강의를 할 예정이었는데 그 교수 대신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수강생들은 장래에 의사가 될 학생들이었다.

남의 강의를 대신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도 그 강의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훌륭한 교수님의 강의였으니까 아무리 잘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그 교수님만큼 강의할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독특한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의를 준비할 시간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고작 2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강의 주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엘리자베스는 무슨 주제로 강의를 진행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불쑥 ‘죽음’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을 둘러보니 의사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고 환자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의사는 죽음에서 환자를 고칠 방법을 생각하였고, 환자는 죽음에서 나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가 환자를 고치더라도 환자는 언젠가는 죽는다.

제아무리 환자를 잘 고치는 의사일지라도 그 의사도 언젠가는 죽는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금기시 여긴다.

누구나 생각하면서도 누구나 말하기를 꺼리는 주제가 죽음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엘리자베스는 모든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서 심도 있게 얘기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자료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우선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죽음에 대한 책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죽음을 다루는 책들 중에 마음에 와닿는 책들이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는 책들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는 진짜 죽음에 대해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녀에게 린다라고 하는 16살 여자아이가 눈에 보였다.

그 아이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매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린다는 곧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데 린다의 엄마는 딸의 생일선물을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다.

누구든지 린다의 마지막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카드를 보내달라는 광고였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린다의 생각은 달랐다.

린다는 낯선 사람들이 보내주는 생일카드보다 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더 병문안을 오기를 바랐다.




린다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엘리자베스는 ‘이거다!’ 싶었다.

그래서 린다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여섯 살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소녀의 말을 젊은 의학도들에게 들려주기로 하였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오직 한 번의 강의였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휠체어를 타고 나온 린다는 의대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음을 앞둔 열여섯 살 아이가 느꼈던 충격과 부정, 분노와 한탄, 하나님과의 거래 그리고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들을 들려주었다.

학생들은 린다의 말에 경청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진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진짜 죽음학 강의를 시작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후에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심리 변화를 5단계로 나누어 정리하였고 그 내용을 <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으로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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