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을 접어야 할 때 그 마음은 어떨까?
꿈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인데 현실은 번번이 대표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빠질 때 ‘이제 축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했는데 스무 살이 넘도록 열심히 운동했는데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소개한 1만 시간을 다 채우고도 남았다.
남들은 1만 시간의 법칙대로 척척 풀려가는데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청소년 선수들 중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등 예능 계열을 택한 이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어렵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이 일로는 먹고살기 힘들 것 같다.
그럴 때 꿈은 사라지고 이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막상 하던 일을 그만두려니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금까지 오로지 그 길로만 왔다.
다른 길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어쩌면 순박했던 것이고 어쩌면 세상 물정을을 모르는 미련한 삶이었다.
그런데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가야 한다니 까마득할 것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나이는 들었고 체력도 약해졌다.
쌩쌩한 어린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
자존심이 상해도 살아남으면 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
깊은 터널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끝이 나올 것 같지 않은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다.
일찍 자리에 누웠어도 새벽이 밝아오도록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아침이 오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뭔가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이라면 기대감과 초조감이 교차하면서 희망이라도 있을 텐데 그런 감정이 없다.
새벽에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아직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앉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젊은이다.
10여 년 전에는 꿈 많은 청소년이었다.
운동을 좋아했다.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그 꿈은 일찌감치 이루었다.
중학생 때 벌써 축구선수였다.
그다음의 꿈은 국가대표였다.
그 꿈은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
아니 이제 그 꿈을 접어야 할 것 같다.
축구를 잘한다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10년 정도 지냈다.
거기서도 축구를 열심히 했다.
한 단계 더 한 단계 더 올라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실력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독이나 코치 혹은 스카우터의 눈의 띄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뛰었을 것이다.
1년이 지나면 나아지려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자리였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것 같다.
깊은 고민 끝에 돌아왔다.
네 꿈을 펼치라고 응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하나의 꿈을 접고 또 다른 꿈을 꾸기를 바랄 뿐이다.
잠자리에서 매일 새로운 꿈을 꾸듯이 인생의 꿈도 매일 새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내 인생은 이렇게 안 풀리나?’라며 우울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식으로 본다면 반 고흐도 실패했다.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아무도 그의 작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도 실패했다.
그의 <피아노협주곡 1번>은 ‘뭐 이딴 작품이 다 있어?’라고 혹평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도 실패했다.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면서 가정도 돌보지 못했다.
위대한 인물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다.
눈물을 머금고 꿈을 접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꿈을 접는 그 순간에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내 앞에 앉은 청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 꿈은 접더라도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