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를 하나 얻었다.
근처에서 지내다가 멀리 이사한 분이 계신데 한 번 찾아뵈었더니 선물이라며 주셨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으셨는지 클로버 이파리가 보이길래 한참 동안 뒤적이다가 몇 개 찾으셨다고 했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었다.
내 눈에는 왜 네 잎 클로버가 안 보일까 할 때쯤이면 하나씩 보였었다.
책갈피로 꽂아놓기도 했었고 친구에게 자랑도 했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었듯이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도 믿었다.
우리 어머니 같으면 미신이라며 그런 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하셨을 거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밤에 휘파람 불지 마라.
밤에 손톱 깎지 마라.
빗자루 세워놓지 마라.
문지방 밟지 마라.
툭하면 뭐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 미신과 관계된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그런 거 믿지 말라고 야단하셨다.
어머니가 그러시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았다.
몰래 밤에 휘파람도 불어보고 손톱과 발톱도 깎아 보았다.
빗자루도 세워보고 일부러 문지방을 꾹 밟고 지나가곤 했다.
설마 나에게 무슨 해코지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는데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어머니의 말들은 나에게 아무런 효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만큼 나에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방탄복이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미신적인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어떤 힘이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힘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얻었을 때도 전혀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네 잎 클로버를 열 장을 얻어도 전혀 행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작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내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 나의 행운이라는 것은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즐거움 정도에서 끝났다.
행운이 나를 비껴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행운을 불러온다는 것들에 열광했다.
2달러짜리 미국 지폐가 있으면 행운이 온다고 하니까 2달러짜리를 구해서 코팅까지 해댔다.
숫자 7은 러키세븐, 행운의 숫자라고 했다.
전화번호나 자동차번호에 7이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괜히 기분 좋아했다.
화초를 좀 키워보려던 사람들은 행운목에 저절로 관심이 기울기도 했다.
행운의 열쇠, 행운의 팔찌, 행운의 집, 행운의 여신 등 행운과 관련짓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을 듣고 너나없이 동전을 던지기도 했었다.
그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보고서 조사해본다면 좋은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연 우리가 행운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 행운을 가져다주었는지 알아보는 거다.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들이 결코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잎말)은 ‘행운’이다.
그런데 네 잎 클로버를 얻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세 잎 클로버를 헤집었다.
네 잎 클로버는 세 잎 클로버의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세 잎 클로버가 네 잎 클로버보다 수십 배는 더 많다.
어쨌거나 세 잎 클로버를 누르고 자르고 짓밟아야 네 잎 클로버를 더 잘 찾을 수 있다.
그때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때였다.
그런데 그렇게 짓밟힌 세 잎 클로버에게도 꽃말(잎말)이 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네 잎 클로버를 찾으면 행운이 오고 행운이 오면 행복이 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행복은 이미 지천에 깔려 있었다.
그걸 모르고 내 발아래 있는 행복을 짓밟고 지나갔다.
내 손아래 있는 행복을 짓누르고 지나갔다.
행운을 찾느라고 이미 있었던 행복을 망가뜨려버렸다.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