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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남자는 말야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쓴다
by
박은석
Jul 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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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다.
스물한 살 때 처음 얼굴을 봤다.
기적이었다.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제주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아내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쭉 서울에서 살았다.
이런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아내와 나는 교회에서 만났다.
스물한 살 때 스쳐가듯
얼굴 한 번
봤다.
그 후에 나는 휴학을 해서 제주도로 내려갔다.
스물세 살이 되어 복학하게 되었을 때는 다른 교회에 가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리고 갈 생각으로 교회에 들렀다.
공교롭게도 일이 틀어졌다.
교회를 옮길 수 없었다.
목사님의 부탁 때문에 그날부터 나는 그 교회의 대학부 회장이 되었고 아내는 부회장이 되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봉사했다.
그 1년 동안 대학부가 계속 쪼그라들었다.
다음 회장 부회장을 세울 수 없어서 아내와 나는 1년 더 회장 부회장 시기를 지냈다.
힘든 시기를 보내다 보니 둘이 친해졌다.
스물세 살 시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1년 반 정도 사귀는 동안에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원 시험에 낙방했다.
군대 소집 영장을 받았다.
머리 깎고 논산훈련소를 들어갈 때 아내가 그곳까지 함께 가 주었다.
조교의 인솔에 따라 나는 훈련소로 들어갔고 아내는 훈련소에서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입술 꽉 물고 감정을 참고 있었는데 웬 아주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오르면서 “아이고”하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 버스 안이 눈물바다였다고 했다.
2년 2개월의 군복무 기간은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다.
아내는 나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보내주었고 나도 아내만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우리 둘의 편지가 지금도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둘이 합쳐서
1,000통은 넘을 것이다.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없었기에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서 생일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 종이학들도 창고 안에 잘 있다.
군복무를 마친 후에 다시 대학원 시험을 치렀다.
7월에 전역을 하고 12월에 시험을 치렀으니까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만 했다.
매일 보고 싶었지만 한 주에 한 번 만나기로 하고 공부에 전념했다.
군복무 기간과 대학원 입시 준비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사랑도 더욱 여물었다.
대학원 1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결혼했다.
장인장모님께서 많이 배려해 주신 덕택이었다.
그때가 스물여덟 살이었다.
친구로 만나서 부부가 되었다.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맡아주셨고 마흔 명 정도의 대학원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주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하객들이 찾아왔다.
대학 친구들은 피로연 장소에도 못 들어갔다.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무더위가 시작되던 7월의 첫 토요일이었다.
그날이 바로 24년 전 오늘 7월 3일이었다.
주마등같이 깜빡깜빡거리지만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 양 기억이 또렷하다.
스물여덟 해를 따로 살았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도 기적이었다.
기쁨도 많았고 아픔도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랑도 더 깊어졌다.
결혼 6년 만에 딸을 낳았고 3년이 지나서 아들을 낳았다.
몇 번 이사를 했다.
서울 광진구, 경기도 장흥, 일산, 그리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거쳐 지금은 분당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14년을 지내고 있다.
잘해준 것은 별로 기억이 없다.
잘해준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나에게 불평을 안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일부러 낮은 자리로 내려온 것 같다.
사람들은 나의 밝은 모습을 보고 내가 늘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늘진 모습이었다.
나를 밝게 만들어준 것은 8할이 아내이다.
결혼 24주년을 빌어서 아내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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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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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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