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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8. 2023

기쁜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을 생각한다


결혼식에 다녀왔다.

신랑이 기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신부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는 부모들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제 다 키웠다는 안도감일까?

아니면 이제 저 녀석들이 어떻게 살아가려나 하는 애틋한 염려일까?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입장이라면 내 마음도 만감이 교차할 것 같다.

오래전에 선물처럼 내 품에 찾아온 딸인데 이제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길 걸 생각하면 쉽사리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다.

그놈이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부디 좋은 놈이길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오늘 결혼하는 신랑과 신부에게 축복한다고, 행복하게 살라고 축하의 인사를 하고 왔다.

활짝 웃는 신랑과 신부의 얼굴 너머로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만만치 않은 세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 급히 그 자리를 피했다.

오늘은 기쁘기만을 바라면서.




긴긴 연애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하는 남녀는 제발 자신들의 사랑이 깨지지 않고 결혼에 골인하기를 바란다.

그때는 사랑의 열매가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만 하면 행복의 고속도로를 달려갈 것이라 믿는다.

다른 사람들은 험난한 결혼생활을 하더라도 자신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확신한다.

양가 부모님을 만나 뵙고 결혼식 날짜를 잡고 이것저것 신혼살림 준비를 하면서 뭔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과연 우리 두 사람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한다.

알콩달콩 재밌게 살 수 있으리라 다짐한다.

드디어 결혼식이 날이 된다.

밀려오는 하객들의 축하 인사를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신랑신부 입장으로 시작하는 결혼식은 신랑신부 행진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들이 들리는데 어디로 행진하라는 것인지 순간 당황한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결혼식만을 생각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이 끝이 아니었다.

결혼은 단지 하나의 매듭을 묶었을 뿐이었다.

그 매듭을 발판으로 삼아서 그다음 삶의 단계로 나아가야 했다.

결혼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결혼과 함께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 결혼 전과 결혼 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상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라 우리 둘의 인생이 된 것이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충격을 받게 되었다.

이 새로운 충격은 이전에 경험해보지도 못한 것이고 생각해보지도 못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고민이 생긴다.

‘이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가면 어떻게 하지? 아니면 내가 이 사람보다 먼저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새로운 고민들은 이와 같은 것들에서부터 시작한다.




수험생들이 꿈에도 그리던 학교에 합격해서 신입생이 되었을 때 갖는 고민이 있다.

‘앞으로 대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다.

첫아기를 낳았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고민이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긴 것인데 그 좋은 일을 맛보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다음의 고민을 한다.

‘앞으로 어떻게’라는 고민이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달성한 것들은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쁜 일을 맛보는 순간에 슬픈 일이 닥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다.

슬픈 일을 겪는 순간 우리는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기쁜 일이 생길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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