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는 나의 인생이다

by 박은석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의 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심리학자들에게는 ‘로고테라피(의미요법)’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에게는 삶의 의미가 있고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다.

삶의 의미를 읽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 속에서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인간은 우연히 태어나서 우연히 죽는 게 아니라고 믿었다.

태어났다면 태어난 의미가 있을 테고 지금 살아 있다면 살아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이 지금 나치의 수용소에 갇혀 있더라도 그 안에서 지내야 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자신의 삶이 수용소에서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끝까지 살아갈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찾아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가 발견한 삶의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그가 밝힌 삶의 의미 중의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사실 프랭클은 오래전부터 로고세러피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나치에게 잡혀 아우슈비츠에 끌려올 때도 자신의 원고를 품 안에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물건을 빼앗겼다.

옷과 신발까지 나치는 모두 가져가 버렸다.

프랭클이 그토록 소중히 간직했던 원고도 그때 빼앗기고 말았다.

프랭클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도둑맞는 것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랭클은 글을 다시 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마음을 가졌다.

프랭클이 수용소에 갇혔던 기간은 3년이었는데 그동안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 제3 카우페링, 튀르크하임 수용소로 옮겨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프랭클 자신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번은 발진티푸스를 앓아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때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그는 죽음 직전에도 책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던지 글쓰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책을 쓴다는 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글쓰기를 그만둔다고 하면서도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왜 그토록 글을 쓰려고 했는지 그 의미를 발견하였다.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가 그에게 그 의미를 알려주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기적처럼 제물로 바쳐질 양이 나타났다.

이삭에게 있어서 그 양은 자신의 목숨을 대신한 것이었다.

여기서 프랭클은 자신의 글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글은 바로 자신의 정신적 산물이며 자신의 인생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의 40번째 생일에 수용소에서 만난 친구가 몽당연필과 함께 나치 친위대의 문양이 새겨진 종이 두 장을 구해서 선물로 주었다.

그 선물을 받는 순간 그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빠른 속도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용소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그가 풀려난 후 불과 9일 만에 초고가 완성되었다.

그 책의 독일어판 제목은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기(Die Psychotherapie in der Praxis)>이다.

영어판으로는 <인간의 의미 탐구(Man’s Search for Meaning)>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만약 그때 프랭클이 자신의 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의 책도, 그가 창안한 로고테라피라는 위대한 유산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분명히 대답해 주어야겠다.

나의 글쓰기는 나의 인생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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