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by 박은석


영국이 인도를 통치할 때 있었던 일이다.

인도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았던 영국인들은 타향살이의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여가도 즐길 겸 해서 콜카타에 골프장을 하나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골프를 칠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방해꾼들이 나타났다.

그 방해꾼들은 다름 아닌 인도 원숭이들이었다.

원숭이들은 영국인들이 친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지자마자 그 공을 얼른 집어 가서 엉뚱한 곳에 던져버리곤 하였다.

공이 떨어진 곳의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시합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기분 좋게 골프를 치려고 했는데 경기가 계속 끊기고 지체되자 골프 시합을 하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되고 말았다.

화가 난 영국인들은 원숭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골프장을 둘러싼 담장을 두 배로 높였다.

하지만 아무리 담장을 높인다고 해도 원숭이들에게는 그 담장을 뛰어넘는 일이 놀이하는 일처럼 쉬웠다.




골프를 치러 왔다가 원숭이들과 계속 다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새로운 골프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은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규칙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규칙 때문에 예상 밖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어떤 사람은 원숭이 때문에 경기를 망치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은 원숭이 때문에 뜻밖의 행운을 맛보기도 하였다.

홀컵 바로 앞에 공을 떨어뜨렸는데 원숭이가 그 공을 주워서 연못에 빠뜨려 버렸을 때는 불운 중의 불운이었다.

반면에 엉뚱한 곳으로 공이 날아갔는데 원숭이가 그 공을 주워서 홀컵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홀인원의 기쁨을 얻은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는 원숭이가 공을 주워 간 것이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원숭이들이 골프장에 나타나는 것이 골프를 치는 영국인들에게 불운이 될지 행운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점차 영국인들이 골프를 치면서 배우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아무리 골프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경기를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믿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원숭이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다 헝클어져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날그날의 골프는 그날그날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게 되었다.

영국인들은 콜카타의 골프장에서 얻은 교훈을 자신들의 삶에도 적용해 보았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지는 않는다.

순간순간 원숭이들이 나타나서 우리의 계획을 다 망가뜨려 버린다.

그때는 마치 우리 삶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원숭이가 우리의 계획을 망가뜨렸다고 해서 우리 삶이 망가지는 것은 아니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은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에서 12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를 참가하고자 인도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비행편이 연기되고 기차편도 구하지 못했다.

갑자기 원숭이가 나타나서 류시화 시인의 모든 공들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때 그는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따라서 그는 새로운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여행길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내 삶을 살아오면서 귀찮은 원숭이들을 여러 번 만났다.

원숭이들이 나오면 그것들을 내쫓으려고 몽둥이를 들고 쫓아갔고 원숭이들이 아예 내 삶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장을 높이 쌓기도 하였다.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소용이 없었다.

원숭이들은 여전히 내 삶에 들어온다.

이제 새로운 규칙을 세워야겠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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