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넘으신 분이시다.
멋들어지게 나이 드신 분이시다.
자녀들 교육도 잘 시키셨다.
사위 며느리 모두 좋다.
성품도 좋고 일도 잘하고 집안도 괜찮다.
팔순이 넘으셨으니까 여기저기 몸이 아프시다.
나이 드셨으니까 아픈가 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그분만 특별히 아픈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괜히 엄살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갖기도 했다.
아프시다고 하니까 잠깐만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고 오려고 했다.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어느 병원에 다녀오셨냐고 여쭈었더니 몇 군데 병원을 다니셨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진통제도 맞고 영양제도 맞고 지압도 받으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데 밤이 되면 또 통증이 심해질 거라고 하셨다.
가슴이 콱 막힌다고 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나아질 병세는 아니었다.
내가 기도를 한다고 해서 통증이 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언제쯤부터 이렇게 자주 아프셨는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2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갑자기 큰 나무가 쿵 하고 쓰러져 버렸다.
남편께서 세상을 떠나가셨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떠나시기 전날 밤에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아침에는...
간밤에 평안하셨냐는 인사가 그냥 하는 인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을 수 있었다.
슬픔도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슬픔을 준비하기도 전에 장례가 끝났다.
슬픔은 슬픔이지만 장례를 치르는 게 더 급선무였다.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남편을 보내고 나서 자식들 앞에서 괜찮은 척해야 했다.
우는 자식들을 보면서 어머니마저 약해지면 안 되었다.
애써 태연한 척, 잘 견디는 척하셨다.
교회에서도 괜찮은 척하셔야 했다.
믿음이 좋은 분이시니까 천국에서 만나실 수 있으니까 다 괜찮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괜찮지가 않으셨다.
마음은 안 괜찮으셨다.
이야기를 꺼낸 김에 실컷 우시라고 했다.
2년 동안 눌러 온 감정을 눈물로 씻어야 한다고 했다.
정말 실컷 우셨다.
남편이라는 거대한 나무 밑에서 편안히 있었는데 그 나무가 없어져 버리니까 기댈 곳이 없다고 하셨다.
남편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했는데 메꿔지지가 않는다고 하셨다.
팔순이 넘으셔도, 자식들 다 잘 키우셨는데도 저렇게 슬픔의 강물이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공자는 부모님이 떠나시면 적어도 3년 동안은 부모님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게 부모님 묘소 옆에서 3년 동안 초막살이를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3년의 초막살이로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공자가 3년을 말한 이유는 슬픔을 견디려면 적어도 3년은 지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3년 동안은 실컷 슬퍼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분에게도 그렇게 말씀드렸다.
적어도 3년은 지나야 슬픔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이다.
거대한 나무가 없어졌으니 자잘한 나무들이 모여서 수풀을 이루자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큰 나무 한 그루에 가려 있었는데 그 밑에 작은 나무들이 여럿 있었다고 했다.
식구들이 각각 한 그루의 작은 나무들이니까 서로 모여서 수풀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내 말이 팔순을 넘으신 분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분명한 사실을 배웠다.
팔순을 넘으셔도 슬픔은 슬픔이다.
아픔은 아픔이다.
나이가 많다고 잘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좋다고 잘 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릇에 물이 차면 넘친다.
마음의 그릇에도 눈물이 쌓이면 넘친다.
참는다고 해서 눈물이 안 나는 것이 아니다.
눈물을 쏟아낼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을 터뜨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아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생긴다.
참느라 생긴 통증이다.
슬픔의 통증이다.
마음의 통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