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볼링장에 갔다.
볼링을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싫어하지도 않는다.
어려서부터 노는 것을 좋아했다.
공이 있으면 더없이 좋았다.
공 하나만 있으면 그 공으로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배구도 했다.
중학생 때는 탁구에 미쳐 지내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 볼링장에 갔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다.
공에 회전을 주는 것은 어려웠지만 굴리는 것은 자신 있었다.
레인 바닥에 그려져 있는 화살표를 보면서 굴리면 될 것 같았다.
한가운데로 굴리면 양 끝에 있는 핀을 쓰러뜨리기 힘들다.
한가운데 있는 핀과 그 옆에 있는 핀 사이로 굴리면 된다.
그러면 스트라이크가 될 확률이 높다.
물론 적당한 속도로 공을 굴려야 한다.
엄지손가락과 중지, 약지를 볼링공의 구멍에 끼워서 중심을 잡는다.
검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은 그 옆에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면 공이 옆으로 굴러간다.
볼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내 실력이 초보 중의 초보이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볼링으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간이 사람들과 어울릴 정도면 충분하다.
볼링 점수가 어떻게 계산되는지도 잘 모른다.
갈 때마다 점수판을 보면서 내가 계산한 점수와 맞춰본다.
그래도 얼추 120점에서 140점대를 오락가락한다.
이 정도가 나에게는 딱 좋다.
내 성격상 볼링 점수에 욕심을 낸다면 한동안 볼링에 푹 빠져버릴 것이다.
중학생 때 탁구를 배울 때도 그랬다.
1년에 300일은 탁구를 쳤던 것 같다.
정말 탁구에 미쳐 있었다.
볼링이라고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렸을 때처럼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어느 한 곳에 쏟아붓기가 조심스럽다.
조금씩 조금씩 아껴 쓰고 나눠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 이 정도의 볼링 수준이 나에게는 딱 맞는 것 같다.
내가 볼링에 푹 빠지기 싫어하는 이유는 또 있다.
볼링장에 갈 때마다 신발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볼링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신발과 공을 장만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한다고 하면 장비는 제대로 잘 갖춘다.
야트막한 산에 가더라도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신고 간다.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도 좋은 라켓 못지않게 전용 운동화를 착용한다.
볼링장에서는 볼링장에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운동화를 신고 왔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볼링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볼링화가 없으니 볼링장에 갈 때마다 신발을 빌린다.
요즘은 볼링화를 소독해서 보관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장비가 없었다.
앞사람이 신었던 신발을 내가 신게 되는 꼴이다.
그러니 신발을 빌릴 때마다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제아무리 소독을 철저히 한다고 하더라도 남이 신었던 신발을 신는 것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같은 치수의 신발이라고 하더라도 남이 신었던 신발은 어딘지 어색하다.
발에 맞지 않는 것 같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기도 하다.
볼링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는 내 실력 탓이기도 하지만 남이 신었던 신발을 신고 볼링공을 굴렸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으니 최고의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는 것은 굉장히 낯선 경험이다.
익숙하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내 신발을 신었을 때는 걷는 것도 쉽고 뜀박질도 쉬운데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으면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불편하다.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가 없다.
내 신발을 신었을 때는 자신 있지만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었을 때는 조심스럽다.
볼링장에서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한번 신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좀 얌전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