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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6. 2023

누구나 가슴에 불 하나쯤은 품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전 세계 65개국의 만 15세 학생 51만 명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ㆍ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가 발표되었다.

PISA는 각 나라의 교육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그 결과에 촉각을 둔다.

<타임>지의 칼럼니스트인 아만다 리플리는 이 평가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당연히 미국 학생들이 높은 순위에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러지 못했다.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세계 2위인데 미국 학생들의 성적은 수학 26위, 과학 17위, 읽기와 독해는 12위였다.

리플리는 도대체 세계에서 교육 1등을 하고 있는 나라의 비밀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교육 강국의 교육관계자 400여 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교환학생으로 그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 학생들도 만났다.

무려 3년 동안 연구하여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특별히 우리나라와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의 교육을 심도 있게 이야기했다.

이 나라들의 교육 수준이 높은 데는 교육 정책, 수준 높은 교사, 부모들의 교육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요인은 바로 학생들의 마음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는 바로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회, 가정의 형편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오직 교육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보려는 마음이 교육현장에 녹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그때 우리 조상들은 오직 교육만이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국가의 살길이라고 믿었다.

악으로 깡으로 배우고 익혔다.

그 결과 반 세기만에 교육강국, 경제강국이 되었다.




우리가 악으로 깡으로 공부할 때 핀란드 사람들은 ‘시수(sisu)’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공부했다.

핀란드어 sisu는 ‘역경을 맞서는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열정, 패기, 끈기, 용기 등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말들로 Sisu를 온전히 표현했다고 할 수는 없다.

sisu라는 말에는 보다 더 큰 뜻이 들어 있다.

아만다 리플리는 이 말을 일종의 '가슴에 품은 불' 같은 것으로 해석했다.

핀란드인의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꽁꽁 얼어붙은 땅에 씨를 뿌리고 감자를 길러내는 것은 열정과 패기와 끈기와 용기가 필요했다.

바로 시수였다.

가슴에 불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삶의 태도가 있었기에 반 세기 전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사람이 국민의 10%밖에 안 되었던 나라가 이제는 교육강국이 되었다.

북극권의 척박한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핀란드인들에게만 sisu가 있는 것이 아니다.

sisu는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불 하나쯤은 품고 있다.

그 불은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 타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평생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도 있다.

나이가 많고 건강이 안 좋다고 해서 그 불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악으로 깡으로가 그 불의 불쏘시개가 되기도 한다.

그 불 때문에 캄캄한 세상을 밝힐 수 있었다.

그 불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불 때문에 미래를 소망할 수 있었다.

그 불 때문에 견뎌 낼 수 있었다.

그 불 때문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불 때문에 오늘까지 왔다.

그 불 때문에 오늘 이후의 삶도 살아갈 것이다.

혹시 가슴에 품은 불이 안 보이거든 후후 불어보라.

그러면 재들은 날아가고 그 안에서 발갛게 타오르는 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에 불이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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