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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4. 2023

출산을 앞둔 후배 부부를 생각하며


아끼는 후배 가족이 오늘 병원에 간다.

산부인과병원이다.

출산을 앞두고 있다.

유도분만을 시도한다.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딸을 낳았던 날을 기억한다.

새벽에 양수가 샌다고 했다.

급히 병원에 데려갔다.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집에 갔다가 다음날 또 병원에 갔다.

오전이 지났다.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양수가 다 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럴 거면 빨리 수술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간호사가 딸을 안고 나왔다.

수술은 금방 끝났다.

하지만 출산의 과정을 초조하게 지켜봤던 나로서는 아기는 빨리 낳는 게 좋다는 생각을 수백 번은 더 한 것 같다.

직접 아기를 낳는 산모들 입장은 더할 것이다.

통증이 몰려고 숨은 가빠지고 서 있기도 힘들고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아기가 빨리 나오기만을 바랄 것이다.




아기를 낳고 나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말.

아기를 뱃속에 가둬놓았을 때는 불편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몸이다.

마음만 먹으면 여기저기 다닐 수가 있다.

아기가 배 밖으로 나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산모가 꼼짝없이 갇힌 몸이 된다.

몸단장을 한다는 것은 꿈에서나 할 일이다.

현실은 부스스한 얼굴에 잔뜩 피로가 묻어 있다.

몸매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먹지 못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물 건너갔다.

모처럼 맛있는 것 먹으려고 식당에 가도 괜히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인생을 송두리째 저당 잡힌 것 같다.

아이에게.

어디에 가나 무엇을 하나 ‘저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생각뿐이다.

엄마의 인생은 그렇게 날아가는 것 같다.




아기가 어느 만큼 자라면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준다.

여러 동화책 중에서 눈길이 가는 책이 있다.

<강아지똥>이다.

보통 ‘똥’이라는 말은 입 밖으로 잘 내뱉지 않는다.

그런데 아기들에게는 다르다.

아기들은 똥을 좋아한다.

똥이라는 말만 나와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똥 색깔만으로도 아기가 건강한지 아픈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인지 아기 엄마들의 손에 <강아지똥>이란 동화책이 집힌다.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어요.’라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돌이가 누구인지 흰둥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설명이 없다.

주인공은 ‘똥’이다.

강아지똥이 한창 기지개를 켠다.

강아지똥은 착하게 살고 싶은 꿈을 꾼다.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가던 참새가 잠시 내려왔다가 기겁을 하며 떠나갔다.

“에그 더러워.” 

강아지똥은 무척 당황했다.

그때까지 자신이 더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서운하고 화도 났다.     




이번에는 저만치 소달구지 바퀴에서 흙덩이가 굴러오더니만 강아지똥을 보고 “너는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라며 비웃었다.

강아지똥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났다.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더러운 똥인가 봐.’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났다.

민들레는 곧 예쁜 꽃을 피울 거라고 하였다.

강아지똥은 민들레에게 어떻게 하면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민들레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에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아지똥에게 “그런데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네가 거름이 돼 줘야 해.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야만 별처럼 고운 꽃이 핀단다.”라고 말해 주었다.

“어머나! 그러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화창한 날에 강아지똥이 있었던 그 자리에는 예쁜 민들레꽃이 피어났다.


민들레가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녹여서 거름이 되어준 강아지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가 예쁘게 태어나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녹여서 거름이 되어주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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