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긴 자가 자기 맘에 맞게 역사를 편집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기록 중에서 단연 신라에 대한 분량이 많다.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이겼기 때문이다.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나 부여에 가 보면 백제 시대의 건축물이 거의 없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더라도 2천 년 전의 건축양식 정도는 남아 있을 텐데 백제의 건축양식은 찾아보기도 힘들다.
반면에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 가면 첨성대도 있고 불국사와 석굴암도 있고 왕릉들도 있다.
신라의 문화들은 남아 있는데 백제의 문화들은 왜 남지 못했을까? 신라는 승자였고 백제는 패자였기 때문이다.
패자였던 백제의 문화는 파괴되고 불살라졌다고 본다.
오죽했으면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일본 교토의 고택들을 통해서 백제의 건축물을 복원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백제처럼 패자의 역사는 그렇게 잊힌다.
그러나 과연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면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일본식 역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본은 문명국가이고 조선은 미개한 국가이며 일본인은 우수한 문명인이고 조선인은 무식한 미개인이라고 했던 역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본이 조선에 철도를 놓고 우편시스템을 구축하고 온갖 공장들을 세워서 조선을 문명화시켰다고 봐야 하는가? 19세기 유럽의 나라들이 산업혁명을 힘입어 제국주의로 치달았다고 해서 서양의 문명을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그렇게 그렇다고 했다.
자기네가 이겼으니까.
승자의 역사가 우월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스만튀르크에 유럽이 짓밟혔을 때는 유럽인들을 미개했다고 해야 하나? 동방의 자그마한 초원에서 시작한 몽골인들에게 유럽이 유린당했을 때는 유럽인들이 미개했다고 해도 되는가?
나는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백제나 고구려를 무시하지는 않는다.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가 없이는 신라의 역사도 없다.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가 없이는 대한민국의 역사도 없다.
그래서 승자인 신라의 역사 못지않게 패자인 백제의 역사도 알고 싶고 고구려의 역사도 알고 싶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데 나의 뿌리는 신라에만 뻗어 있는 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도 뻗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를 대할 때 될 수 있으면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비평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만약 그 시대에 그 상황 속에서 살았다면 나도 내가 어떤 길을 택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내가 살았다면 나는 의병이 되었을까? 일제강점기 때 내가 살았다면 내가 독립운동을 했을까? 모를 일이다.
내 어머니는 나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이니 얌전히 있으라고 했을 것이다.
조마리아 여사께서는 안중근 열사에게 “너는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거기서 죽어라!”라고 편지를 쓰셨던데 내 어머니는 그러지 못하셨을 것 같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 속에는 나라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 같은데 선뜻 나선 분들이 있다.
우리는 그분들을 위인이라고 한다.
그 위인들이 다 성공한 사람들은 아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이 아까운 목숨만 잃고 패자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 속 위인들에 대해서 그때 왜 그렇게 했느냐고 해서는 안 된다.
그분들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한 분들이다.
뜻을 같이 했다가 중간에 변절한 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헤아려 보면 일편단심을 지킨 분들이 대단한 위인이란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비판을 하기 전에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