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까 잘하게 된 일

by 박은석


나는 음악, 미술 같은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고등학생 때 합창반 반장을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행운이었다.

합창반장을 하기에 딱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는 피아노도 칠 줄 알았고 기타도 잘 쳤고 노래도 잘 불렀다.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그런지 운동도 꽤 잘했다.

물론 연애도 잘했다.

1학년 때 벌써 동급생 중의 한 여학생과 사귀고 있었다.

그게 여학생들에게 미움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꽤 괜찮은 친구였다.

나보다 성적은 조금 낮았지만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친구였다.

분명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다재다능한 면 때문에 친구들에게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에 나는 뭐 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어부지리로 내가 합창반 반장에 선출된 것이다.

그때 알았다.

선거는 잘난 사람을 뽑을 수도 있지만 나처럼 어리숙한 사람을 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합창반에 들어가게 된 것도 순전히 행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음악시간에 선생님께서 우리 반 모든 학생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셨다.

내 기억에 그때 불렀던 노래가 <목련화>였던 것 같다.

“오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고등학교 1학년 봄까지는 내 목소리가 꽤 괜찮았다.

아직 2차 변성기 전이었고 교회 성가대에서 어느 정도 음악 교육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동급생들보다 조금은 잘 불렀던 것 같다.

무엇보다 노래 부르는 내 목소리가 컸으니까 선생님께서 합격 점수를 주셨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그 음악시간이 바로 합창반 오디션 시간이었다.

어쨌든 그 음악시간이 끝나고 얼마 후에 선생님께서 합창반 단원에 합격한 학생들을 부르셨다.

거기에 당당하게 내가 포함돼 있었다.

솔직히 나는 합창반이라는 자부심보다 여학생들과 함께 노래 부른다는 즐거움 때문에 합창반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 합창반은 정말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합창반장으로서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팀웍은 굉장히 좋았다.

도내 고등학교 합창제에 출전했지만 너무나 허망하게도 순위에 들지 못했다.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어서 4부 합창을 했는데 다른 학교들은 남성만으로 혹은 여성만으로 구성된 합창반이었다.

우리 합창반원들은 우리가 떨어진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심사위원들이 혼성 4부 합창을 제외시켜서 그랬다는 루머를 퍼뜨리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노래를 유심히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우리 합창반을 오케스트라단과 협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연주회가 있었는데 우리에게 헨델의 <메시아> 중에서 <할렐루야>를 불러달라고 했다.

선생님과 우리 합창단원들은 신이 났다.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을 해서 그해 12월 26일에 공연을 했다.




그해 겨울에 합창반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지금도 흥얼거린다.

한 곡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고 또 한 곡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이다.

나는 음악에 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틈틈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할렐루야>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그 곡을 작곡한 베르디와 헨델에 대한 책을 읽고 그 곡들을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아예 오페라 <나부코>를 보았고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전곡을 감상하였다.

더 나아가서 베르디가 지은 다른 오페라들도 보게 되었고 헨델이 지은 다른 곡들도 듣게 되었다.

이제는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몇 마디 끼어들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음악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까 음악을 알게 된 것이다.

음악뿐이 아니다.

내 삶의 모든 일들은 어쩌다 보니까 잘 알게 된 것들이다.

어쩌다 보니까 잘하게 된 일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