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밤이 지나버렸다.
눈을 떠 보니 새벽이다.
간밤에 써야 할 글이 있었는데 못 썼다.
잠깐 자리에 누우려고 했을 때 잠깐 참았어야 했다.
시간을 보내 버리면 그 시간에 했어야 했던 일은 영영히 할 수가 없다.
어찌어찌 일은 하겠지만 그건 또 다른 시간에 하게 된다.
그러면 그 일을 하는 동안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일은 그 이후의 또 다른 시간으로 옮겨진다.
아래 벽돌을 빼서 위에 쌓는 격이다.
시간을 놓쳐 버리면 그 놓친 시간은 영원히 빈 구멍으로 남는다.
그 텅 빈 구멍의 이름을 나는 ‘후회’라고 하겠다.
시간을 놓쳐 버릴 때마다 내가 후회를 하기 때문이다.
벽돌이 빠져서 생긴 구멍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놓쳐 버린 시간도 멀리서는 안 보인다.
다른 사람은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내 삶은 온통 후회라는 구멍으로 송송 뚫려 있다.
구멍을 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깨끗한 벽이 되고 말끔한 건물이 될 것이다.
후회가 없다면 흠도 틈도 없는 완벽한 삶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현듯 내 고향 제주도의 돌담길이 떠올랐다.
어렸을 때 우리는 마을 골목을 ‘올레’라고 불렀다.
그 올레길은 우리 집과 옆집을 이어주었다.
여기서부터 우리 집 마당과 텃밭이고 저기서부터 옆집이라는 경계선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돌담이었다.
밭에 가면 우리 밭과 옆 밭 사이에 돌담이 놓여 있었다.
돌이 많아서 밭과 밭 사이에 돌담을 쌓아서 소유지를 구분하였다.
제주도의 돌담은 돌과 돌 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구멍을 작은 돌로 막지 않는다.
그래서 돌담의 그 구멍으로 옆집 마당을 구경할 수 있었다.
숨바꼭질할 때는 돌담의 구멍으로 술래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다.
우체부는 돌담의 그 구멍에 편지를 꽂아놓고 지나가기도 했다.
돌담의 구멍이 맘에 들지 않아 시멘트로 깨끗하게 막아놓은 집들이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렇게 담장을 쌓는다고 하면서 마치 큰물에서 놀다 온 것처럼 폼을 잡았다.
구멍을 막아버린 담장은 처음에는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까 아이들은 그 담장 곁에 가지 않았다.
구멍이 없는 담장에는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마당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술래의 모습을 볼 수도 없었다.
밋밋한 담장은 제주도의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벽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크게 분 날이 있었다.
태풍이 무섭게 몰아친 날이었다.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이 날아가기도 했다.
그 바람의 위력 앞에 깔끔하게 쌓은 담장도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엉성하게 쌓아 놓은 돌담은 멀쩡하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구멍을 막아놓은 담장은 무너졌지만 구멍을 열어 놓은 돌담은 꿋꿋하게 서 있었다.
구멍이 돌담을 살린 것이다.
내 인생의 구멍이라고 생각했던 후회들도 제주의 돌담과 같은 것 아닌가 싶다.
구멍이 숭숭 뚫린 그 후회들 때문에 인생이 너덜너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구멍들 때문에 인생의 세찬 바람을 견뎌냈는지 모른다.
구멍 하나 없이 꽉 막혀 있으면 누가 나에게 다가오기라도 했을까?
구멍 하나 없이 완벽했으면 내가 사람들에게 다가갔을까?
구멍 하나 없이 깨끗했으면 내가 하나님을 찾았을까?
구멍 하나 없었다면 내가 사람이었을까?
살면 살수록 후회하는 일들이 쌓인다.
구멍이 그만큼 많아진다.
그런데 그 구멍들 덕분에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게 된다.
후회할 일들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용서와 격려를 받게 되고 후회할 일들이 있기에 다음에 더 잘해 보려는 각오도 다진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좋은 삶은 아닐 것이다.
후회라는 구멍을 잘 사용해서 사는 게 좋은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