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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8. 2023

아픈 시간을 보내며


아팠다.

좀 많이 아팠다.

나는 안 아플 줄 알았다.

나는 피해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아픔은 나를 피하지 않았다.

정면에서 나에게 도전을 걸었다.

이까짓 것쯤이야 했는데 그러기에는 아픔이 컸다.

잘 쉬어야 한다기에 잘 쉬려고 했다.

아프니까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다고 해서 잘 쉴 수 있는 게 아니다.

통증이 오면 누워 있는 것도 곤욕이다.

기침이 나오면 누워 있는 게 더 힘들다.

누워만 있으면 괜히 마음에 부담만 커진다.

쉬는 것 같지만 전혀 쉬는 게 아니다.

아프지 않아야 제대로 쉴 수 있다.

잘 먹어야 한다기에 잘 먹으려고 했다.

치킨 한 마리를 사서 맛있게 먹어보려고 했다.

고소한 치킨이라고 해서 맛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 입에서는 쓴맛이 났다.

이상한 치킨이었다.

전화를 걸어서 치킨 맛이 왜 이렇게 쓰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내가 아파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연휴를 앞두고 사람들은 무척 분주했다.

도로는 자동차들로 빼곡했다.

선물을 사러 백화점으로, 대형마트로 몰려드는 차량들이 서로 뒤엉켜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선물을 사서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나에게도 잘 다녀온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나? 딱히 갈 데가 없다.

아프니까 그렇다.

아픈 몸으로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실례이다.

그들도 나처럼 아프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픔은 나 혼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아픔은 옆사람에게 전염이 된다.

그래서 아픈 사람 옆에 있으면 자연스레 아파진다.

안 아프려고 해도 아파진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진다.

그래서 내가 아프면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좋다.

혼자 아픈 게 둘이 아픈 것보다 훨씬 낫다.

물론 아픈 사람이 건강한 사람 옆에서 건강을 얻는 경우도 있다.

그건 건강한 사람의 건강이 차고 넘쳐서 그런 것이다.




많이 아프다고 해서 그 아픔이 영영히 계속 갈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모든 아픔에는 끝이 있다.

마치 호숫가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들어갔다가 그다음에는 무릎, 허리, 가슴 높이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키를 넘는 깊은 곳까지 들어선 후에는 다시 가슴, 허리, 무릎, 발목 높이까지의 물로 걸어 나오게 된다.

내가 겪고 있는 아픔도 그런 곡선 주기를 그리고 있다.

첫째 날에는 조금 아팠고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많이 아팠다.

넷째 날에는 아픔의 정점을 찍은 것 같더니만 오늘은 많이 나아진 걸 느낄 수 있다.

깊은 물에 빠졌다가 겨우겨우 물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는 심정이다.

이제 아픔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아픔이 끝나면 몸은 다시 개운해질 것이다.

아픔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아픔도 영원하지는 않다.

언젠가는 그칠 것이다.

그러니 아픔 앞에 기죽지 말아야 한다.     




평상시에 텔레비전을 안 본다고 자부하고 다녔었는데 아프니까 누워서 리모컨 누르는 게 하나의 일이 되었다.

굉장히 단순한 일인데 그 단순한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평상시 같아서는 보지도 않았을 방송들을 보았다.

책 읽고 글을 쓰는 것처럼 고상한 척하는 일들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아프면 단순해진다.

그런데 단순하다는 것은 안 좋은 게 아니다.

단순한 것은 기본적이라는 말이다.

모든 전문적인 일은 단순한 일에서 시작된다.

모든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에서 시작된다.

건강할 때는 단순한 것을 무시했는데 아프니까 단순한 것이 좋았다.

복잡한 일들과 뒤엉킨 인간관계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아프면 단순하게 나만 생각하면 된다.

굉장히 이기적인 삶을 살면 된다.

그것이 나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나 또한 그렇게 아픈 며칠을 보냈다.

이제 많이 나아졌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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