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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8. 2023

우리 동네 김밥집 공감동김밥


얼마 전에 우리 동네에 독특한 김밥집이 생겼다.

나는 김밥집이라고 하면 아이들이나 즐겨 가는 분식집으로 생각해왔다.

아니면 혼자 간단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곳 정도였다.

그런데 이 김밥집은 좀 다르게 보였다.

간판부터 굉장히 세련되었다.

김밥집이라고 하면 간판이 으레 빨간색인데 이 가게는 그런 촌스러운 색깔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가게 앞에 가서도 이 집이 김밥집인 줄 모르는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가게 이름도 특이했다.

천냥, 천원, 천국 같은 구시대적 이름이 아니었다.

‘공감동’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니까 ‘공감동 김밥집’이다.

사장님에게 이름의 뜻을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공감’, ‘감동’, ‘동행’이라는 말을 합쳐놓은 듯하다.

김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고, 김밥 맛에 감동하고 그다음에는 이 김밥집을 자주 찾아와서 이 가게와 동행하게 되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게 이름에 담은 것 같다.




가게 앞을 지나면서 언젠가 한 번 이곳에 와서 김밥을 먹어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마침 오늘 점심에 그런 기회를 가졌다.

뭔가 먹기는 해야 할 텐데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안 먹으려니 배는 고프고.

그럴 때는 간단하게 김밥 한 줄이면 된다.

라면이라도 한 그릇 있으면 더 좋고.

동료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뭘 먹을까 얘기하다가 김밥이나 한 줄 먹자고 했다.

그도 나도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가게로 가기로 했다.

10미터 앞에서 보니 가게 앞에 여러 명이 줄을 선 것 같았다.

순간 망설였다.

김밥 한 줄 먹자고 줄까지 서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대부분 포장을 해서 가려는 사람들이었다.

가게 안에는 앉을자리가 조금 있었다.

우리는 무슨 김밥을 먹을지 고민이 되었다.

독특한 이름의 김밥들이 보였다.

매콤진미채, 묵은지참치, 불고기묵은지 등 독특했다.




김밥 종류를 보는데 역시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재료들을 가지고 김밥을 만들 줄은 몰랐다.

역시 한국인은 쌈 싸 먹는 일에는 세계 최고이다.

일본이 아무리 자기네가 김밥의 원조라고 하지만 우리의 김밥 역사는 일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이미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부터 우리는 김을 먹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김을 오늘날처럼 종이 형태로 펼쳐서 먹었고 조선 후기에는 밥을 김에 싸서 먹었다고 한다.

상추와 깻잎만 싸 먹었던 게 아니다.

우리는 어지간한 것은 다 싸 먹을 수 있는 먹성을 타고났다.

이때쯤에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김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초밥에 김을 사용하였는데 그게 ‘노리마키’로 발전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 일본의 노리마키와 우리의 쌈 싸 먹는 문화가 합쳐지면서 우리만의 독특한 김밥이 만들어졌다.




먹거리가 부족했을 때는 김밥 한 줄이 최고의 식사였다.

소풍날이나 운동회 때에는 김밥에 사이다가 있어야 폼이 났다.

김밥을 먹는 날은 일 년에 서너 번 특별한 날이었다.

먹거리가 늘어나고 지갑에 여유가 생겨났지만 여전히 김밥의 인기는 식지 않는다.

최고급 호텔의 뷔페에서도 김밥은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한다.

한국인치고 김밥을 안 먹어본 사람은 없다.

한국인의 가정치고 김밥을 안 만들어본 가정도 없다.

이제는 너무나 흔한 음식이고 너무나 저렴한 음식으로 여긴다.

하지만 김밥이 싸다고 해서 김밥을 싸는 정성이 싼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나는 오늘 공감동김밥집에 가서 알았다.

가서 보면 안다.

김밥 한 줄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심지어는 김밥 접시의 크기가 김밥 한 줄의 크기였다.

김밥접시를 담은 쟁반은 그 폭이 김밥접시의 길이와 딱 맞았다.

보기 좋은 김밥은 맛도 좋았다.

우리 동네 공감동김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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