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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04. 2024

“힘내세요”보다 “잘 견디세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힘내세요.”라는 말보다 “잘 견디세요.”라는 말을 즐겨한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한다.

사업이 좋았던 때는 지난날이었다.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라고 하는 1년 전, 2년 전, 아니 10년 전에도 경기는 안 좋았다고 했다.

어쨌거나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내가 하는 말은 “잘될 겁니다.”라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다.

“복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아니다.

“잘 버티세요.” “잘 견디세요.”라는 말을 주로 한다.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는 말이 있다.

전장에서 적군을 많이 물리친다고 해도 자신이 목숨을 잃는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승리는 없다.

어쨌거나 살아남아야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업가나 샐러리맨이나 누구에게나 세상은 전쟁터 같다.

경기가 좋든 안 좋든 잘 버텨야 한다.

잘 견뎌야 한다.

잘되고 복 받고 부자 되는 것은 그다음이다.




아픈 사람을 만났을 때도 나는 “힘내세요.”라는 말보다 “잘 견디세요.”라는 말을 한다.

물론 나도 힘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헤어질 때 환자를 향해서 하는 인사말이 힘내라는 말이었다.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인사가 ‘안녕하세요?’인 것처럼 아픈 사람에게 하는 인사말이 ‘힘내세요.’인 것 같았다.

그 공식대로 사람을 대했었다.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이다.

가족을 잃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유족에게 내 입에서 무심결에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얼른 입술을 닫았다.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상대방이 듣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안녕할 리가 없는 상황인데 안녕하냐고 묻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뻔했다.

어떤 인사말이 좋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잘 견디세요.”라는 말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이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도, 그 다친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가족에게도 잘 견디라고 인사한다.

코로나든 독감이든 감기든 병들어 아파하는 사람에도 잘 견디라고 인사한다.

어떤 질병은 사나흘 견디면 낫고, 어떤 질병은 열흘 정도 견디면 낫는다.

그보다 더 길게 가는 질병도 있지만 어쨌든 견뎌야 낫는다.

관절 수술을 받은 사람은 한두 달 견뎌야 하고 암수술을 받은 사람은 5년을 견뎌야 한다.

견디다 보면 부러진 관절이 더 단단하게 붙고 견디다 보면 악성 종양의 흔적도 사라진다.

제아무리 좋은 의사를 만나고 좋은 약을 쓴다고 하더라도 견디지 못하면 낫지 않는다.

견디는 게 처방전이고 견디는 게 약이다.

견디는 게 의사이고 견디는 게 간호사이고 견디는 게 약사이다.

이것이 몸에 좋다 저것이 몸에 좋다는 말은 잘 들으면서도 견디는 일에는 소홀한 사람들이 있다.

좋은 것 잘 먹어도 견디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의 배를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조선 해군은 끝까지 잘 견뎠다.

견디는 중에 물살도 바뀌고 바람도 바뀌었다.

견디다 보니 전술도 생겼고 작전도 생겼고 군사들의 사기도 올랐다.

그들이 견디지 않았다면 명량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하지만 다산은 그 기간을 원망하며 보내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을 연마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그렇게 견디었기 때문에 <목민심서>도 나왔고 <여유당전서>도 나왔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매 주일마다 새로운 곡을 써서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을 하게 했다.

그가 위대한 작곡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에 한 곡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을 견디었기 때문이다.

견디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힘내라는 말보다, 안녕하라는 말보다 잘 견디라는 말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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