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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Feb 13. 2024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최저(崔抒)라는 높은 직위의 벼슬아치가 있었다.

그의 동료 당공(棠公)에게는 아리따운 부인이 있었는데 당공이 죽자 최저는 그녀를 자기 첩으로 삼았다.

그런데 당시 제 나라의 임금인 장공도 당공의 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최저의 첩이 되었다고 하니까 장공은 그녀를 보기 위해서 최저의 집에 자주 방문하였다.

장공은 임금이라는 권력을 내세워 최저의 첩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최저의 모자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등 모욕을 가하기도 하였다.

엄청난 모욕감을 느낀 최저는 기회를 엿보아서 장공을 암살하였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서 장공의 동생 경공(景公)을 왕위에 올려놓았다.

그 후에는 모든 신하들을 불러들여서 새 임금과 자신 앞에 충성서약을 하게 하였다.

제나라는 최저의 천하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태사(太史)라는 관직을 맡은 사관(史官)이었다.

대충 얼버무리듯이 기록해도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니까 지금의 실세인 최저의 입맛에 맞게 기록하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태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내용을 곧이곧대로 기록하였다.

‘최저가 장공을 죽였다(崔杼弒莊公)!’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임금도 죽여버리는 최저인데, 한낱 사관 나부랭이가 최저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 같았다.

결과는 뻔했다.

최저는 그 사관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의 동생을 태사 자리에 앉혔다.

최저는 새로운 태사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였을 것이다.

태사도 분명히 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네 형처럼 되지 않으려면 내 맘에 들게 역사를 기록해야 돼!”




하지만 이 새로운 태사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자기 형님의 죽음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관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자 역할이었다.

그는 붓을 들어서 자기 형님이 썼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최저가 장공을 죽였다(崔杼弒莊公)!’ 그 글을 보고 엄청나게 화가 난 최저는 이 새로운 태사도 죽여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태사 자리에는 이미 죽은 이전 태사들의 막내 동생을 앉혔다.

두 명의 형님이 죽었으니까 이제는 최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사람들도 이제는 희망을 접었다.

어차피 최저의 세상인데 최저의 입맛에 맡게 대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런데 새로운 태사는 입장이 달랐다.

저 신의 임무는 사실 기록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최저가 장공을 죽였다(崔杼弒莊公)!’라고 썼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태사 가문의 막내까지 최저가 죽였을까?

아니다.

최저는 그를 살려두었다.

친구의 아내를 빼앗고 임금을 시해할 만큼 법과 도덕을 무시하였던 최저였지만 태사 형제들의 모습을 통해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목숨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관들에게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사관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사관들의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가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종이도 부족하고 먹물도 부족했던 시대였는데 사관들의 마음과 정신은 부족한 게 하나도 없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모든 게 풍족한데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사관이 없다.

그런 사관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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