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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r 07. 2024

선거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가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학교였기에 누가 학생회장에 출마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과에서 특출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축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아기연주도 잘하는 친구였다.

당시에는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하교, 해군사관학교가 꽤 인기있는 대학이었는데 그 친구는 사관학교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나와는 합창반에서 함께 활동을 했었다.

나는 베이스 파트의 여럿 중 하나였고 그 친구는 테너 파트의 대표 주자였다.

학생회장 등록 마지막 날에 우리 반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내용인즉슨 학생회장과 부회장 자리를 이과에 모두 내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과에서도 후보를 내야 하는데 다른 반에서는 도저히 인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 반에서 후보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반 친구들은 총학생회장 선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회의 분위기는 자뭇 진지했다.

문과의 명예를 걸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자 진지함을 넘어서 비장한 감정이 감돌기도 했다.

결국 우리 반에서 두 명을 추려서 후보로 내보내기로 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나였다.

강씨 성을 가진 친구와 나는 서로 누가 회장에 출마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별로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그 친구가 선뜻 회장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부회장으로 출마하게 되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다음 날이 바로 선거일이었기 때문이다.

문과생들의 특징이 이럴 때 발휘되는 것 같다.

선거일 전날 긴급 학급회의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선거운동 방법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구호도 만들었고 포스터도 만들었다.

방과 후 모두 귀가한 틈을 타서 교내 곳곳에 그 포스터를 붙이기로 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은 엄청난 일들을 실행에 옮겼다.




다음 날 아침 등교한 학생들 사이에서 강상철과 박은석의 이름이 엄청 거론되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총학생회 회장 후보와 부회장 후보였기에 도대체 그 녀석들이 어떤 놈들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교문에서부터 강상철과 박은석의 이름이 쓰인 포스터가 나돌았다.

교실 출입문에도 내 이름이 붙어 있었고 화장실에도 붙어 있었다.

심지어 여자화장실에도 떡하니 강상철과 박은석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전체 조회에서 각 후보자들이 정견발표를 하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반 친구들이 선거판을 바꿔버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내 이름을 외치고 눈이 돌아가는 곳마다 내 이름이 보이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물론 정견발표를 할 때, 어떤 내용의 말들이 들어가면 좋은지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결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내가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게 선거라는 것이다.

국민이 나라의 지도자를 뽑고, 그렇게 뽑힌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어가는 제도가 민주주의제도이다.

실력과 경험이 많으며 사람들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준비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전혀 새로운 인물이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다.

나도 고등학생 때 선거 하루 전날 후보 등록을 하고서도 오랫동안 준비한 친구를 제치고 당당하게 당선되었다.

나에게 대단한 정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몰아갔다.

그때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얼마 안 있으면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있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온갖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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